익숙함의 위험성, 신앙생활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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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아직 어둠이 남아 있던 새벽, 소돔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고요했습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밤, 내일도 계속될 것 같은 평범한 시간.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고, 불은 꺼져 있었고, 이 도시가 하나님의 심판을 앞둔 마지막 밤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두 천사가 롯의 집 앞에 섭니다. 그들은 밤새 머물지 않습니다.

머뭇거릴 여유도 없습니다. “네가 여기서 얻은 자들을 모두 데리고 떠나라. 이 성이 곧 여호와 앞에서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롯은 즉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귀로는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이 도시에 머물러 있습니다. 소돔은 이미 악으로 가득 찬 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경고를 무시하며 살아온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롯에게 소돔은 삶이 정착된 도시였습니다. 집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이미 적응해 버린 일상의 리듬이 있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단지 성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붙잡고 살아온 삶을 내려놓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가 지체하매.” 롯은 계산합니다. 가족을 떠올리고, 집을 떠올리고,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마음에 올려봅니다.

“정말 지금 떠나야 합니까?”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됩니까?” 위험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심판보다 익숙함이 더 크게 느껴졌을 뿐입니다. 그때, 천사들이 롯의 손을 잡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아주 담담하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으로 그들이 그의 손과 그의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성 밖으로 인도하였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설득하지 않습니다. 토론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붙잡고 끌어냅니다. 롯이 살아남은 이유는 그가 결단력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단단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더 컸기 때문입니다. 같은 경고를 들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롯의 사위들입니다. 그들은 웃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의 사위들에게는 농담처럼 보였더라.” 말씀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말씀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을 뿐입니다. 결국 그들은 그 익숙한 도시와 함께 그 자리에 남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래된 소돔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악해서 무너진다기보다, 익숙해서 머뭅니다. 말씀을 몰라서가 아니라, 말씀을 농담처럼 흘려듣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지체하는 사람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구원은 우리가 용기 내어 뛰쳐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비로 붙잡아 끌어내신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으로 경고하시고, 자비로 손을 내미시며, 우리가 스스로 끊지 못하는 소돔에서 우리를 성 밖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 손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향해 뻗어 있습니다.

묵상과 성찰

내가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선해서가 아니라, 잃을까 두려워 익숙함에 몸을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익숙함은 나를 보호하는 울타리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느끼게 만드는 은근한 마취일 수 있다. 오늘 내 삶 속에서 위험한 줄 알면서도 익숙해서 머물고 있는 ‘소돔’은 무엇인가요?

말씀이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말씀을 순종의 자리로 받아들이기보다 안전한 거리에서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라고 미루고 있는 삶의 영역은, 하나님께서 지금 떠나라고 부르시는 자리일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경고가 아니라 익숙한 소리, 농담처럼 들리고 있는 부분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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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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