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에 속아 은혜를 값싸게 만들지 않는 거룩한 분별력
이야기로 읽는 묵상
유다는 원래 기쁜 마음으로 '우리가 함께 받은 구원'에 대해 편지를 쓰려 했습니다. 하지만 펜을 든 그의 손은 떨렸고, 마음은 다급해졌습니다. 외부의 적이 칼을 들고 쳐들어온 것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적이 이미 '우리 안'에 몰래 들어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곁에서 함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들은 하나님의 피 묻은 십자가 은혜를,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 '방종의 면허증'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Lord)'이 아니라, 내 필요를 채워주는 '수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유다는 경고합니다. 애굽을 탈출했다고 해서 가나안 입성이 자동이 아니었듯,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구원이 자동 판매기처럼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무너진 것은 건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룩함이 없어서였습니다. 진짜 위기는 밖에서 오는 박해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는 '거룩의 상실'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는 공짜지만, 결코 싸구려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쉽게 "하나님은 다 이해하실 거야"라는 말로 나의 게으름과 죄를 합리화합니다.
본문은 이것을 '꿈꾸는 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영적인 잠에 취해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본능과 욕망을 하나님의 뜻인 양 포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적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공격보다, 내 안에서 "이 정도는 괜찮아"라고 타협하는 나의 마음입니다. 거룩함은 답답한 구속이 아니라, 나를 죄로부터 지키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입니다.
오늘 하루, 내 안에 몰래 들어온 '가짜 주인'은 없는지 살피시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복음과 성찰
은혜의 점검
하나님은 어차피 용서해 주실 거야"라는 생각으로,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반복하고 있는 습관은 없나요?
주권의 인정
오늘 내 스케줄과 계획 속에서 예수님은 결재를 받는 '주인'입니까, 아니면 통보를 받는 '참고인'입니까?
내부의 적
내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 환경인가요, 아니면 내 안의 안일함과 타협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