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려 애쓰지 않을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약 1,586자읽는 데 4분

이야기로 읽는 묵상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결핍의 관점’을 주입합니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기회는 희소하니, 지금 움켜쥐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질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불안에 쫓기며, 내 몫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경쟁, 즉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을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에서 타인을 위한 양보란, 어리석은 패배자의 변명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아브람은 그 생존의 법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선택을 합니다.

“네가 좋은 것을 먼저 택하라. 나는 네가 남긴 곳으로 가겠다.”

이것은 단순히 사람 좋은 삼촌의 호의가 아닙니다. 생존권이 걸린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실력’입니다. 아브람은 알았습니다. 내 인생의 안전지대는 비옥한 땅이라는 ‘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말입니다. 반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육신의 눈에 속습니까. 조카 롯처럼 당장 눈에 보기에 화려하고 풍요로운 곳, 성공이 보장된 것 같은 길을 좇습니다. 하지만 육신의 눈에 완벽해 보이는 그 조건들이, 때로는 우리 영혼을 가장 메마르게 하는 함정이 되기도 합니다.

눈에 보이는 풍요가 영혼의 빈곤을 가리는 가면일 수 있음을 롯은 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을 양보하고 황량한 빈들에 선 아브람. 세상의 계산기로는 분명한 ‘손해’이자 ‘실패’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빈손이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눈을 들어라. 보이는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다.”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육신의 눈을 감고, ‘믿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내가 움켜쥐려는 손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을 챙기려 하면 딱 내 그릇만큼만 살게 되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의 크기만큼 살게 됩니다. 오늘, 불안해서 꽉 쥔 주먹을 펴십시오. 당신이 믿음으로 양보하고 포기한 그 자리가, 사실은 하나님이 가장 놀라운 것으로 채우시기 위해 예비하신 ‘은혜의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묵상과 질문 3가지 - 복음적 성찰

관점의 차이

아브람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내 삶의 주권자’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중요한 선택 앞에서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육신의 눈)’을 따릅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가치와 하나님의 뜻(믿음의 눈)’을 신뢰합니까? 아브람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내 삶의 주권자’이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 삶의 안정이 ‘통장과 스펙’에 있다고 믿습니까, 아니면 ‘나를 먹이시는 아버지’께 있다고 믿습니까?

내면의 동기

우리가 무언가를 꽉 움켜쥐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 소중해서가 아니라,

실은 놓치면 죽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이 불안은 내 믿음의 중심이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로 이동했다는 영적 신호등입니다.

내가 지금 내 힘으로 결과를 통제하려다 지쳐버린 영역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성적, 직장에서의 인정, 노후 자금 등). 내가 그것을 그토록 놓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지 않으실지도 모른다는 깊은 불신앙 때문은 아닌가요? 롯이 요단 들판을 보며 느꼈을 부러움처럼, 최근 타인의 SNS나 성공을 보며 ‘나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 적은 언제입니까?

그 조급한 감정이 나의 시야를 가려, 정작 중요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믿음의 결단

진짜 믿음은 무언가를 더 얻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기꺼이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용기에서 증명됩니다.

우리가 양보하여 만든 빈 공간에 하나님은 세상의 땅보다 더 큰 당신의 임재를 채우십니다.

오늘 하루, 가정이나 직장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설 때 “네 말이 맞아, 네가 원하는 대로 해보자”라고 말하며 주도권을 넘겨줄 수 있는 대상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에게 지는 것이 내 자존심이 무너지는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를 심는 거룩한 승리임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누군가 나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거나 억울하게 할 때, 즉각적으로 방어하거나 공격하는 대신 3초간 멈추고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고 되뇌어 볼 수 있습니까?

그 짧은 순간, 감정적인 대응 대신 침묵이나 축복을 선택함으로써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시오.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

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이지열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