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마리아 여인은 여전히 물을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는 아직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 물을 제게 주십시오. 다시는 여기 오지 않게 말입니다.” 이 말은 믿음의 고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삶이 덜 번거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더 가깝습니다. 갈증은 해결하고 싶지만, 자기 삶의 구조까지 바꾸고 싶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갑자기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이 질문 앞에서 여인은 멈춥니다. 피하고 싶었던 자리로, 가장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로 예수님은 그녀를 데려가십니다. 왜일까요? 예수님은 그녀의 도덕을 고발하려는 분이 아니라, 그녀가 무엇으로 자기 인생을 버텨왔는지를 드러내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인에게 남편은 관계의 문제이기 이전에 갈증을 채우려 했던 방식이었습니다. 사랑, 인정, 안정, 존재의 의미를 사람에게서 길어 올리려 했던 삶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의 삶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은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고, 직장인은 역할과 평가로 버티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은 결과로 미래를 담보하려 하고, 부모는 자녀를 통해 자기 존재의 이유를 확인받으려 합니다.
문제는 그것들을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주님을 대신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이 말은 예배 장소를 바꾸라는 말이 아닙니다. 삶의 중심을 바꾸라는 선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장 의지하며 살고 있는지, 무엇이 무너지면 함께 무너지는지,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앉아 있는지 정직하게 보라는 초대입니다.
묵상과 성찰 3가지
예수님은 우리의 갈증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갈증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내 삶에서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다른 것으로 주님을 대신할수록, 마음은 더 바쁘고 더 마르게 됩니다. 그것이 흔들릴 때,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더 잘 설명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는 버틸 수 없음을 인정하는 삶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대신할 무언가를 관리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