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 않고 믿는 믿음은 가능한가?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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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그 환영은 신뢰라기보다 기대에 가까웠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보다, 무엇을 보여 주실지를 궁금해했습니다. 보여 주시면 믿겠다는 태도. 확인되면 맡기겠다는 태도. 그 모습은 오늘 우리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업은 결과가 나와야 안심하고, 직장은 성과가 보여야 확신하며, 합격 통보가 와야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약속보다 증거를 더 신뢰합니다.

그때 왕의 신하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겉으로는 권세 있는 사람이지만, 실상은 아픈 아들을 둔 절박한 아버지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직접 와 달라고 요청합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함께 가지 않으십니다. 한 문장만 남기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여전히 병든 아이가 있고, 눈앞에는 아무 기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돌아섭니다. 말씀 하나를 붙들고 길을 떠납니다. 믿음은 그 순간 시작되었습니다. 상황이 바뀐 뒤가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 장면이 묻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만들어 줄 결과를 믿는가? 보여야 움직이는 믿음은 결과에 묶인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걷는 믿음은 말씀하시는 분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은 설명이 끝난 뒤에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먼저 걷기 시작할 때 자랍니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

그 믿음은 우리를 겨우 버티게 하는 힘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묵상과 질문 3가지

참된 믿음은 문제가 해결된 뒤에 고개를 끄덕이는 확신이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말씀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는 선택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결과가 보장되어야만 순종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안전장치가 있어야만 결단하는 습관은 없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환경을 즉시 정리해 주기보다, 그 환경을 바라보는 신뢰의 방향을 바꾸십니다. 상황이 아니라 ‘말씀하신 분’을 붙들게 하십니다. 지금 내 삶의 자리—사업의 결정, 직장의 관계, 취업의 기다림, 자녀의 문제—에서 “가라, 살아 있다”처럼 이미 주신 약속은 무엇이며, 나는 그 약속을 붙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눈에 보이는 변화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기적은 믿음이 있어야 주어지는 조건이 아니라, 말씀을 신뢰하며 걸어간 자리에서 뒤늦게 확인되는 열매입니다. 믿음이 먼저이고, 증거는 나중입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지만, 말씀 때문에 한 걸음 순종해 본 순간이 있었습니까? 그때 나는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했고, 무엇을 얻게 되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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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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