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하늘에 닿으려 발버둥 치지만, 구원은 우리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삶의 낮은 곳으로 찾아오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야기로 읽는 묵상
성경은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원을 만났다고 합니다. 에덴의 동쪽, 가인의 동쪽처럼 성경에서 '동방'은 하나님을 등지고 멀어지는 방향을 의미합니다. 그곳에서 인류는 최초의 기술 혁명을 일으킵니다. 울퉁불퉁한 자연석 대신 규격화된 '벽돌'을, 진흙 대신 완벽한 방수제 '역청'을 발명한 것입니다.
그들은 최첨단 신소재를 손에 쥐고 외칩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 이것은 단순한 건축이 아닙니다. 신 없이도 완벽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인간의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하늘까지 닿으려 했을까요? 그들의 속마음은 4절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겉으로는 화려한 마천루였지만, 그 기초에는 '존재론적 불안'이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이 두려웠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지우고 그 자리에 '내 명함과 업적'을 채워 넣으려 했습니다.
바벨탑은 교만의 상징이기 이전에, 두려움으로 쌓아 올린 거대한 방어기제였습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 앞에 하나님이 반응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려오셨더라." 이것은 성경의 거대한 유머입니다. 인간은 죽기 살기로 쌓아 올렸는데, 하나님 보시기엔 너무 작아서 굳이 아래로 내려와야만 보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벼락 대신 '언어'를 혼잡하게 하십니다. 말이 통하지 않자, 관계가 깨졌고 문명은 멈췄습니다.
고작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다고 붕괴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쌓은 제국의 허망한 실체입니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은 "별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도시의 네온사인이 너무 밝으면 하늘의 별이 보이지 않듯, 내가 쌓은 바벨탑이 너무 높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다시 '흩어지게' 하십니다. 그것은 저주가 아닙니다. 내 힘으로 쌓은 성이 무너진 그 빈 들판에서, 비로소 우리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너져야 할 것이 무너지는 것은 은혜입니다.
묵상과 질문 3가지
[방향 점검] 성경에서 '동방'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을 상징합니다. 최근 나의 결정과 삶의 방향을 돌아보십시오. 더 좋은 조건, 더 화려한 성공, 더 편안한 환경을 쫓아가고 있는데, 묘하게도 그 길 끝에서 예배가 소홀해지고 하나님과의 시간이 줄어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시날 평원'을 향한 길은 아닌지 정직하게 물어보십시오.
[동기 점검] 내가 쌓는 성의 재료는 '두려움'인가, '순종'인가? 바벨탑을 쌓은 동기는 "흩어짐을 면하자"는 두려움과 "우리 이름을 내자"는 과시욕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치열하게 쌓아 올리고 있는 노력들의 진짜 동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도태될까 봐 두려워서 쌓는 '나만의 안전장치'입니까?
[관계 점검] 나는 벽돌을 굽고 있는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바벨탑 사람들은 '벽돌(성과/일)'은 중요하게 여겼지만, 결국 '언어(소통)'가 막혀 망했습니다. 나는 지금 성과를 내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희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가족이나 동료와 말이 통하지 않고 관계가 단절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내 삶의 바벨을 멈추라고 보내시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복구해야 할 '언어'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