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살면서 꼭 한 번쯤은 “이제 기대 안 해.” 라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너무 실망해서, 기도해도 바뀌지 않아서,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마음이 천천히 식어 갑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죽었다고 믿은 뒤, 야곱은 살아 있었지만 사실 마음은 오래전에 무너져 있었습니다. 창세기 45장을 보면 요셉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처음에는 믿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너무 오래 아팠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오래 무너지면 좋은 소식조차 의심하게 됩니다. “설마.” “또 실망하면 어떡하지?” “기대했다가 무너지면 더 아프잖아.” 그래서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희망보다 체념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놀라운 장면을 보여 줍니다. 요셉은 형들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레를 보내고, 양식을 보내고, 옷을 보내며 가족을 초대합니다. 과거에는 옷 때문에 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채색옷은 형제들의 질투를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요셉은 다시 형들에게 옷을 입혀 줍니다. 복음은 이런 것입니다. 상처가 시작된 자리에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하시는 은혜. 요셉의 사랑은 형들을 살렸고, 아버지 야곱의 죽어 가던 마음까지 다시 일으켰습니다.
창세기 45장 2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기운이 소생하였더라.” 참 놀라운 표현입니다. 몸이 살아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살다 보면 육체보다 마음이 먼저 죽을 때가 있습니다. 웃고는 있지만 기쁨이 없고, 사람들을 만나지만 마음은 닫혀 있고, 예배는 드리지만 기대는 사라져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사람의 믿음과 사랑과 용서를 통해 다른 사람의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어쩌면 오늘 누군가는 내 말 한마디를 통해 다시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정죄 대신 이해를, 냉소 대신 따뜻함을, 비난 대신 기다림을 선택하는 작은 사랑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변화시켰고, 바로의 왕궁까지 움직였고, 무너진 아버지의 마음까지 살려 냈습니다.
사랑은 생각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히 “착하게 살아라”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소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배신했을 때도, 도망갔을 때도, 식어 버렸을 때도,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다시 오너라.” “내가 너를 품겠다.” “네 마음을 다시 살리겠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마음을 살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내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최근 누군가의 마음을 살리는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치게 만드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