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드리고, 탐욕은 계산합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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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랑은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묻지 않습니다. 사랑은 그저 드립니다.

그러나 계산하는 마음은 항상 묻습니다.

“그게 정말 가치 있는 일인가?” “그만한 이유가 있는가?” “그럴 만한 사람이 맞는가?”

그래서 계산은 늘 사람의 자격을 먼저 따집니다.

“그 사람이 받을 만한가.” “그 사람이 그 정도 가치가 있는가.”

유다의 마음이 바로 그랬습니다. 향유를 보며 사랑을 보지 못했습니다. 헌신을 보며 낭비만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탐욕의 눈은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만한 분이신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사랑은 가치를 계산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장면을 깊이 생각해 보면 마리아의 사랑보다 더 놀라운 사랑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우리를 위해 부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이유입니다.

우리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도 아닙니다. 우리가 충분히 선해서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은 자격을 보고 시작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에서 흘러나온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도 그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찾기도 전에 그 사랑은 이미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사랑받았습니다.”

마리아의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조차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작은 응답일 뿐입니다.

십자가를 아는 사람은 더 이상 계산으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계산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얼마를 드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아는 사람의 삶에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랑이 계산보다 커집니다. 은혜가 두려움보다 커집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게 마리아처럼 살기 시작합니다.

사랑은 설명보다 먼저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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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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