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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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살면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만납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결과가 기대와 다를 때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는데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유를 찾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우리는 이해해야 안심하는 존재입니다.

설명되면 견딜 수 있고, 논리가 맞으면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복음은 우리에게 아주 불편한 진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구원은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십자가는 실패입니다. 힘이 아니라 약함입니다. 승리가 아니라 패배입니다. 영광이 아니라 수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정말 저게 하나님의 방법인가?"

고린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수사학을 좋아했고, 강한 사람을 존경했고, 눈에 보이는 성공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웅변도, 철학도, 지혜도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오직 십자가만 들고 갔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십자가보다 다른 것을 의지합니다. 능력을 의지합니다. 경력을 의지합니다. 통장을 의지합니다. 사람들의 평가를 의지합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너질 때면 알게 됩니다. 내가 붙들었던 것들이 나를 끝까지 붙들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십자가가 보입니다.

십자가는 "네가 강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네가 잘해서 용납받는 것이 아니다." "네가 가치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가장 약할 때, 네가 가장 실패한 것 같을 때, 네가 가장 초라할 때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우리는 자격을 증명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단순히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머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같은 설교를 들어도 그저 종교 이야기로 듣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아,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 "나는 생각보다 더 큰 죄인이었지만, 동시에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랑받고 있었구나."

그 순간 십자가는 지식이 아니라 생명이 됩니다.

오늘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현실도 견딜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오늘도 이해보다 신뢰를, 논리보다 복음을, 자기 능력보다 십자가를 붙드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요즘 십자가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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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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