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의미를 모른다면,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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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람들은 종종 영적 성숙을 오해합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 오래 교회를 다닌 것, 직분을 가진 것, 기도를 오래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영적 성숙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고린도전서 3장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많았습니다. 지식도 많았습니다. 열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향해 "신령한 자"라고 부르지 않고 "육신에 속한 어린아이"라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문제는 지식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말하면서도 십자가의 방식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사람을 더 높였습니다.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자신이 속한 그룹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시기하고, 분쟁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아직 육신에 속한 자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죄보다 상처에 민감하고, 은혜보다 비교에 민감하고, 십자가보다 인정에 민감합니다. 누군가 나보다 앞서 가는 것 같으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칭찬받지 못하면 서운합니다. 내가 한 수고를 알아주지 않으면 속상합니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중심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십자가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를 보여주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하나님께 이렇게까지 사랑받는 존재다"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열등감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나의 죄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영적 성숙이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십자가를 붙들고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세우고,

하나님만 높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날 것입니다. 그때 한번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십자가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있는가?" "나는 나를 드러내고 싶은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싶은가?" 영적 성숙은 특별한 능력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아는 만큼,

십자가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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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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