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 '심히 좋았다'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9문답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대해 배웁니다. 창조는 하나님께서 그의 권능의 말씀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엿새 동안 모든 것을 만드신 일이며, 그 모든 것은 “심히 좋았습니다.” 창세기 1장 1절과 히브리서 11장 3절은 이 진리를 확증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심히 좋았다’는 표현을 오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사람이 살기 편했다’거나 ‘재난이 하나도 없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히브리어 ‘토브(טוֹב)’는 하나님의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고, 그분이 의도하신 질서 안에 온전히 있었다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창조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완벽하게 기능하고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자연재해, 죄와 어떤 관계인가요?
그렇다면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역시 ‘심히 좋은’ 창조의 일부였을까요?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가 들어오기 전에는 자연재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아담의 죄 이후 모든 자연 질서가 함께 무너졌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로마서 8장의 “피조물이 함께 탄식한다”는 말씀이 그 근거입니다. 둘째는 지질 활동 자체는 있었지만 그것이 재앙은 아니었다는 견해입니다.
현대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이 견해를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합니다. 지구의 판 구조 운동은 산과 대륙을 형성하고 탄소 순환을 가능하게 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좋은 창조 질서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이 질서 자체가 아니라, 타락 이후 그 질서가 우리에게 죽음과 고통을 가져오는 세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불은 유익하지만, 집이 불타면 재난이 됩니다. 불 자체보다 그것이 죽음을 가져오는 환경이 문제인 것입니다.
성경, 특히 로마서 8장은 인간뿐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가 죄의 영향 아래 탄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두렵습니다. 산은 무너질 수 있고, 바다는 사람을 삼킬 수 있으며, 땅은 흔들려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보며 감탄하지만 동시에 무력함을 느낍니다. 죽음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우리는 본능적으로 죽음에 저항합니다.
죽음과 고통은 하나님의 처음 의도가 아니었으며, 죄가 들어온 세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특정 재난이 특정 개인이나 지역의 죄에 대한 직접적인 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가 많아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재난은 죄로 인해 깨어진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이지만, 특정 재난을 특정 죄의 결과로 단정하는 것은 잔인한 해석이며, 고통받는 이들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해석은 고통받는 이들 곁에서 함께 탄식하는 것입니다.
탄식 속의 소망: 하나님의 회복 계획
우리는 지금 ‘좋은 창조’와 ‘깨어진 현실’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아직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로마서 8장은 피조물의 탄식으로 끝나지 않고 소망을 이야기합니다. 피조물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의 답은 명확합니다. 처음 창조는 좋았고, 현재 세계는 탄식하지만, 마지막에는 새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난 앞에서 쉽게 설명하려 하지 않고, 먼저 울고 함께 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처음 의도하신 세상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깨어진 세상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창조를 시작하셨고, 마지막에는 피조세계까지 회복하실 것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의 탄식 속에 위로와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