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이것은 제게 필요한 도구이지만 저를 구원할 하나님은 아닙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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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람은 불안할수록 누군가의 손을 잡습니다. 문제는 손을 잡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손에 구원자의 역할까지 맡기는 것입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강대국의 위협 앞에서 서로 손을 잡았습니다. 혼자서는 불안했지만 둘이 힘을 합치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함께 강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다메섹은 무너진 성읍이 되고, 이스라엘의 영광도 쇠하여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나라가 손을 잡았지만, 그 손으로 하나님까지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불안할 때 비슷하게 행동합니다. 통장 잔액을 자꾸 확인하고, 누군가의 답장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이고, 일정을 빈틈없이 채우고, 내 능력과 경력을 증명하려 애씁니다. 관계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며, 계획과 실력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 삶을 지켜 줄 마지막 보루가 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할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구원의 하나님을 잊고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운 나무를 심고 정성껏 가꾸었습니다. 노력도 했고, 계획도 세웠으며, 빨리 열매를 맺게 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추수할 날이 되자 남은 것은 근심과 슬픔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심는 일은 할 수 있지만, 열매까지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도 없고, 내일의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도 없으며, 내가 쌓은 것을 끝까지 지켜 낼 수도 없습니다. 모든 흔들림을 곧장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흔들림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내가 무엇을 하나님처럼 붙들고 있었는지, 무엇이 사라지면 내 삶까지 끝난다고 생각했는지를 드러냅니다. 놀랍게도 이사야는 심판 가운데서도 소망을 말합니다. “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보겠으며.” 손에 쥔 것이 무너진 뒤에야 눈이 열립니다. 나를 지켜 주는 것은 내가 만든 제단이 아니라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며, 내가 붙든 사람이나 조건이 아니라 나를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본문 후반부에서 침략자들은 파도처럼 소리치며 몰려옵니다. 현실의 소리는 너무 커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 꾸짖으시자 그들은 바람 앞의 겨와 산 위의 티끌처럼 사라집니다. 두려움은 크게 소리치지만 마지막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마지막 말씀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복음 안에서 우리는 심판이 끝난 뒤에야 겨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기 때문에, 오늘도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나를 잊었느냐”고만 책망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자신의 손을 내미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사람의 손을 놓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하되 구원자로 붙들지 않고, 돈은 사용하되 반석으로 삼지 않으며,

계획은 세우되 내일의 주인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안할수록 더 세게 붙잡기보다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주님, 이것은 제게 필요한 도구이지만 저를 구원할 하나님은 아닙니다. 제가 붙잡은 손보다 저를 붙드시는 주님의 손을 신뢰하게 하소서.”

지금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하나님보다 더 강하게 붙들고 있는 사람, 조건, 능력 또는 계획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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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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