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앗수르의 위협이 가까워지자 유다는 구스와 애굽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나라는 강하고 풍요로웠으며, 사람도 자원도 많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조건만 놓고 보면 의지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어 보였습니다. 우리도 불안해지면 비슷해집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만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너무 초조해집니다.
그래서 통장의 잔고, 영향력 있는 사람, 확실한 경력, 빈틈없는 계획을 하나님의 자리에 조금씩 올려놓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부정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만으로는 불안하다”고 느낍니다. 우상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돈과 사람과 계획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사용하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사람만큼은 내 편이어야 해.’ ‘적어도 이 일만은 계획대로 되어야 해.’ ‘이 조건까지 무너지면 나는 정말 끝이야.’ 그것이 우리에게 애굽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애굽에 임하시자 우상들이 떨고, 지혜자들의 판단이 흐려지며, 경제의 근원이었던 나일강마저 마릅니다.
그토록 견고해 보였던 나라가 밖에서 공격받기 전에 안에서부터 흔들립니다. 서로를 공격하고, 판단력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내가 붙들던 것이 흔들리면 마음의 평안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운 사람을 탓하고, 작은 말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조급한 결정을 내립니다. 나를 지켜 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 흔들리자, 나 자신도 함께 흔들리는 것입니다.
우상은 평소에는 우리에게 자신감을 주지만, 위기에는 우리를 잔인하게 만듭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밀어내고, 관계를 소모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몰아붙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애굽을 흔드시는 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지하는 모든 것을 빼앗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거짓 구원자로부터 건져 내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구원은 더 강한 제국이나 더 완벽한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무력하고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바로 그 십자가에서 죄와 죽음의 권세가 무너졌습니다. 세상은 큰 소리와 강한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지만,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을 삶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도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을 구원자의 자리에서 내려놓는 것입니다. 오늘도 필요한 일을 성실히 준비하십시오. 도움을 구하고, 방법을 찾고, 책임 있게 움직이십시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사용할 수 있도록 주신 하나님께서 나를 살리십니다.”
지금 이것만큼은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하나님보다 더 간절히 붙들고 있는 나의 ‘애굽’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