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보기 원하네, 주의 능력의 날을...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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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대부분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결정합니다.

가능성이 보이면 움직이고, 결과가 예상되면 선택합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늘 하나의 기준이 있습니다. “이게 의미 있는 선택인가?” 그런데 창세기 25장의 아브라함은 전혀 다른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모든 소유를 이삭에게 줍니다. 이건 단순한 상속이 아닙니다.

보이는 기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을 기준으로 정리하는 삶입니다.

다른 아들들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분산이 더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압니다. 하나님이 어디에 약속을 두셨는지 무엇이 진짜 이어지는 것인지 그래서 그는 눈에 보이는 공평보다

보이지 않는 약속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다르게 삽니다. 결과가 보이면 확신하고 흐릿하면 미룹니다 손에 잡히는 건 붙들고 약속은 뒤로 미룹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자꾸 “나중에”로 밀립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평생 약속을 완전히 보지 못했지만 끝까지 기준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이미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아니라

약속하신 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루어졌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라 믿었기 때문에 끝까지 붙든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있는가 보이는 결과인가, 보이지 않는 약속인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루고 있는 순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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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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