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이사야 묵상) 불안은 늘 '빨리'라는 얼굴로 옵니다. & 은혜묵상 시리즈(2) 사랑하라는 명령이 힘든 진짜 이유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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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불안해지면 사람은 가만히 있기가 어렵습니다. 무언가를 알아봐야 하고, 누구에게라도 물어봐야 하고, 빨리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취업이 막히면 채용 사이트를 계속 새로고침하고, 돈이 부족하면 머릿속으로 몇 달 뒤까지 계산하고, 관계가 흔들리면 상대의 말 한마디를 계속 해석합니다. 자녀의 문제가 생기면 가장 좋은 방법부터 찾고, 사업과 사역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새로운 전략을 고민합니다. 물론 준비하고 움직이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문제는 불안할수록 ‘움직이는 것’ 자체가 나를 구원해 줄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유다가 그랬습니다. 앗수르가 위협해 오자 유다는 애굽으로 달려갑니다. 애굽의 군대와 말과 전차가 하나님의 약속보다 훨씬 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망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계획했고, 사람을 보냈고, 동맹을 맺었고, 돈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행동 앞에 아주 중요한 한마디를 붙이십니다.

“나에게 묻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만 하나님을 잊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급해서 하나님을 잊기도 합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마음속에서 답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묻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당연히 이렇게 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더 늦어질 거야.” “내가 빨리 해결해야 해.” 불안은 우리에게 계속 속도를 요구합니다.

그런 유다에게 하나님은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이사야 30:15

그런데 유다는 말합니다.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

하나님은 “잠잠하라”고 하시는데 유다는 “더 빨리 달리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무엇을 해야 하지?’를 가장 먼저 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그보다 먼저 묻도록 하십니다.

‘나는 지금 누구를 믿고 있는가?’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만 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행동하기 전에 삶의 주도권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잠함은 무기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불안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매우 적극적인 믿음의 행동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전화를 해야 한다면 전화하고, 지원서를 내야 한다면 지원하고, 계산해야 한다면 계산하십시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나를 구원한다고 믿지는 마십시오.

내가 세운 계획이 나를 붙드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 무너져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더 빠르게 움직이는 능력일지 모르지만, 때로는 그 반대입니다.

불안이 시키는 속도를 잠시 늦추고

하나님께 다시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 무엇이 두려운가요?” “그래서 무엇을 붙잡으려고 하고 있나요?” “제가 하나님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은 계속 우리에게 빨리 결정하고, 빨리 따라잡고, 빨리 증명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모든 속도가 믿음은 아닙니다. 때로 믿음은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나를 끌고 가려는 방향에서 멈출 줄 아는 힘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답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답을 다 알지 못해도 하나님 없이 먼저 달려가지 않는 믿음인지 모릅니다.

요즘 내가 가장 조급해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충분히 묻기도 전에 이미 어떤 ‘애굽’을 찾아 달려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말씀과 연결하기 고린도후서 9장 6~15절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3)많이 심는 자는 3)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기록된 바 ㄱ)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4)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5)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말씀과 은혜 묵상

고린도후서 9:6–15

바울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돕는 헌금을 말하면서, 액수보다 마음의 방향을 먼저 봅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린도후서 9:7

우리는 사랑하면서도 쉽게 계산합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하고, 내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면 더 이상 잘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어느 순간 기쁨이 아니라 의무가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순히 “더 기쁘게 베풀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고린도후서 9:8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기꺼이 사랑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의지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인지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반응을 사랑의 연료로 삼으면 오래 사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받은 사랑에서 시작하면 상대가 기대만큼 반응하지 않아도 사랑을 곧바로 거두어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마지막에 우리가 무엇을 드렸는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는지를 바라봅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후서 9:15 사랑은 억지로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먼저 받은 은혜가 내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바꾸려 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요즘 누구에게 사랑을 계산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순간 내가 잊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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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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