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일만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처럼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사업이 어려워진 사람은 장사가 잘되던 때를 생각하고, 관계가 틀어진 사람은 아무 일 없었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몸이 아프면 건강했던 일상이 얼마나 귀했는지 뒤늦게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복을 종종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두로도 그랬습니다. 한때 지중해를 누비며 돈과 명성을 쌓았던 도시가 하루아침에 쇠락합니다. 그리고 15-16절에는 잊힌 두로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래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나 아직 여기 있어.
나 예전처럼 다시 잘할 수 있어.
나를 다시 기억해 줘.”
이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너지고 나면 단지 다시 일어서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직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증명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실패한 뒤 더 성공하려 하고, 관계에서 상처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 더 인정받으려 하고, 무너진 뒤에는 이전보다 더 멀쩡해 보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이사야 23장의 마지막은 뜻밖입니다. 두로가 다시 살아납니다. 다시 무역하고, 다시 돈을 법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달라집니다.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18절)
하나님은 두로를 과거로 돌려보내신 것이 아니라,
같은 일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돌려놓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회복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전처럼 만들어 주시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주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지나온 실패와 상처와 눈물까지 품으시고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같은 일상을 살아가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십자가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린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통과하신 그리스도께서 새 생명으로 일어나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도
‘옛날처럼 되게 해주세요’에만 있지 않습니다.
오늘 다시 출근하고,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돈을 벌고, 다시 가정을 돌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주님, 이번에는 이전과 다르게 살게 해 주세요.”
이 기도가 회복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단순히 되돌려 놓으시는 분이 아니라,
지나온 것까지 사용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입니다.
나는 요즘 무엇을 두고 ‘예전처럼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되돌려 놓는 대신, 나를 새롭게 하신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