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 위에 놓고 살아갑니다. 직장이 내년에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금의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고, 건강도 어느 정도는 유지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통장에 있는 돈, 내가 쌓은 경력, 사람들에게 얻은 신뢰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불안할수록 사람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안전장치를 더 꼼꼼히 관리합니다.
돈이 줄어들면 불안하고, 누군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흔들리고, 계획이 틀어지면 삶 전체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문제는 그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사라지면 나까지 무너질 정도로 거기에 나를 걸어 버리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이사야 24장은 상당히 충격적인 장면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황폐하게 하시자 왕과 백성, 부자와 가난한 사람, 빌려 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의 차이가 사라집니다. 우리가 평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신분과 조건들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아무런 방패가 되지 못합니다. 더 인상적인 것은 7절 이하입니다.
포도나무가 시들고, 노랫소리가 멈추고, 사람들이 즐기던 자리에서 기쁨이 사라집니다.
사라진 것은 단순히 포도주가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확신입니다.
본문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힙니다.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결국 이사야가 말하는 심판의 핵심은 재산의 상실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채 살아가면서도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살았던 인간의 삶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의지하던 것이 흔들릴 때입니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고, 관계가 달라지고, 기다리던 결과가 나오지 않고, 내가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인생이 갑자기 내 손을 벗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주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것까지 흔드시는가?”
그러나 때로 흔들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셨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며 살았는지를 보게 하시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는 작은 소망 하나가 남습니다. 감람나무를 흔들고 포도를 거두고 난 뒤에도 남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의 복음도 바로 이 ‘남은 자’의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십자가에서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망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흔들려도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삶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이 흔들리는 것과 하나님께서 나를 놓으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세상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계획도 바뀔 수 있고, 사람의 마음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필요한 믿음은 모든 것을 붙잡는 힘이 아니라,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도 나를 붙들고 계시는 분을 다시 신뢰하는 것입니다.
요즘 이것만큼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흔들린다 해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