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사기는 뜻밖의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었습니다. 한 시대를 이끌던 지도자가 사라졌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불분명합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전략회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삿 1:1)
그들은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사사기의 마지막 문장과 정확히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의 끝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묻지 않습니다.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사사기의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버린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묻던 사람들이 조금씩 자기 판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기 시작한 데서 깊어집니다.
다만 본문에서 유다가 시므온에게 함께 올라가자고 한 것 자체를 곧바로 불순종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협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사사기 전체가 보여 주는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계산이 점점 더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하나님께 하루를 맡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출근하고, 연락이 오고, 일이 밀리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면 어느 순간부터 오늘의 방향은 말씀보다 급한 일, 사람의 반응, 내 기분이 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문제는
“오늘 아침 기도했는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오늘 하루 동안 누구의 판단을 가장 신뢰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매사에 특별한 표적을 기다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주신 말씀 앞에서 내 생각을 다시 조정하는 것입니다. 화가 날 때 바로 말하지 않는 것, 불안하다고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 것,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다고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하지 않는 것, 일이 잘 풀린다고 내 방식이 옳았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묻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얼마나 완벽하게 판단하는지를 요구하시기보다,
판단이 흐려질 때 다시 물으러 오는 사람을 붙드십니다.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는 부담보다 오늘도 다시 물을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로 시작하십시오. 길을 모두 알아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 걸음을 물을 분이 계시면, 오늘은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께 묻기보다 이미 결론을 내려 놓고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