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살다 보면 선한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길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걱정해서 건넨 말이 부담이 되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나선 일이 오히려 상대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공동체를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을 말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었는데.” 물론 그 마음까지 거짓이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는지와 상대방이 무엇을 경험했는지는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한 지파를 보존하겠다는 목적은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실로의 여성들을 납치하도록 허용했습니다. 한 지파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빼앗은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이 이 일을 여호와의 명절이 열리는 실로에서 계획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 태도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신앙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자신의 판단만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익숙한 경험과 선한 의도에 기대어 누군가의 형편을 충분히 듣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질문하지 않게 되고,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하면 함께 걷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도 놓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자기 확신이 강해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판단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다른 사람의 삶까지 헤아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사람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그들이 부족했던 것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심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판단을 넘어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순종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에도 각자의 이유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잘 마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사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루어 낸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오늘 하루, 내가 하려는 일이 옳은지뿐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누군가가 존중받고 있는지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