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없는 한 가지가, 받은 모든 것을 가릴까요?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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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족한 것부터 확인합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연락,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사람, 노력한 만큼 따라오지 않는 결과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도 어느새 계산적으로 변합니다. “하나님, 이것까지 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이만큼 기도했는데, 왜 아직 그대로입니까?” “하나님이 정말 저를 사랑하신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져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을 거꾸로 돌려놓으십니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하나님은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드셨습니다.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셨으며, 가장 좋은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망대를 세우고 술틀까지 준비하셨습니다. 포도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포도원은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은 백성이 사랑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바라셨지만 포학이 있었고, 공의를 기다리셨지만 억울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들렸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도 이 대조는 아주 선명합니다. 하나님은 ‘정의’를 바라셨지만 ‘피 흘림’이 나타났고, ‘공의’를 기다리셨지만 ‘부르짖음’이 들렸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은혜를 반복해서 받다 보니, 은혜를 은혜로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이 됩니다. 선물은 권리가 되고, 기다림은 거절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이 이미 해 주신 수많은 일보다 아직 해 주지 않으신 한 가지가 더 크게 보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깊은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할 때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보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시는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결과를 사랑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열매를 찾으십니다.

그 열매는 하나님께 사랑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미 사랑받은 사람이 어느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사랑받았다고 말하면서도 약한 사람을 외면하고, 내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며, 욕심을 정당화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말뿐인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열매 맺지 못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감사하게도 성경의 이야기는 실패한 포도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참포도나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맺지 못한 순종의 열매를 예수님께서 온전히 맺으셨고,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에게 “더 좋은 열매를 만들어 하나님께 사랑받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으라.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라.”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길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감정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다시 기억하는 것입니다. 돌을 골라내시고, 좋은 나무를 심으시고, 끝내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 주신 사랑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랑은 요구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사랑은 기억에서 자랍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 더 해 달라는 말보다 먼저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들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랑하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그 사랑 안에 머물 때 우리의 일상에도 정의와 자비, 정직과 오래 참음이라는 좋은 열매가 조금씩 맺히기 시작할 것입니다.

나는 요즘 하나님께서 해 주지 않으신 한 가지에 마음을 빼앗겨,

이미 베풀어 주신 사랑과 오늘 내 삶에서 맺어야 할 열매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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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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