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이음교회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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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찬양을 멈출 수 없는가?

이지열은혜이음교회
오늘의 본문시편 135장 1-14절펼치기

1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2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3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4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5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위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도다 6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7안개를 땅 끝에서 일으키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를 만드시며 바람을 그 곳간에서 내시는도다 8그가 애굽의 처음 난 자를 사람부터 짐승까지 치셨도다 9애굽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행한 표적들과 징조들을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보내셨도다 10그가 많은 나라를 치시고 강한 왕들을 죽이셨나니 11곧 아모리인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가나안의 모든 국왕이로다 12그들의 땅을 기업으로 주시되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주셨도다 13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 14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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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지열 담임목사

서론

우리는 자주 불평합니다. 이유가 있을 때도 있고, 이유 없이 터져 나올 때도 있습니다. 불평은 말만이 아닙니다. 눈빛, 한숨, 말투 속에도 그림자처럼 스며듭니다. 가정에서도 불평은 자랍니다. “내가 더 참았다.” “내가 더 이해했다.” 결국 서로를 탓하고, 말은 날카로워집니다.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밤늦게까지 일했는데 아무도 몰라줄 때. 내 보고서는 묻히고, 옆 사람이 주목받을 때. 열심히 노력했는데 이름조차 불리지 않을 때. 마음은 금세 억울해집니다. 교회 안에도 불평이 있습니다. “왜 늘 같은 사람만 하지?” 웅성거림은 점점 커집니다. 관계 속에서도 불평은 쌓입니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연락해야 하나?”

서운함은 눈덩이처럼 굴러갑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평의 뿌리는 “나”입니다. “내가 옳다.” “내가 인정받아야 한다.” 불평은 억울한 하소연 같지만, 속은 자기 자랑입니다. 그래서 불평이 길어질수록 감사는 사라지고, 찬양은 메말라 갑니다.

본론

시편 기자는 우리를 다시 부릅니다. “여호와의 종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라.” 찬양은 강요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살리시기 위한 초대입니다. 시편 135편은 그 이유를 밝힙니다.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 비가 언제 내릴지, 바람이 어디서 오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아니, 만드십니다. 내가 통제자가 아니라는 사실. 찬양할 때, 그 환상은 무너집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때, 비교와 경쟁에서 벗어납니다.

성취가 아니라 선물을 보게 됩니다. 결과를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납니다. 건강의 연약함 속에서도 돌보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함 속에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찬양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강해졌습니다. 울타리 안에서는 내 문제만 보입니다.

찬양할 때, 울타리를 넘어 전능하신 하나님을 봅니다. 시야가 넓어질 때, 불평은 힘을 잃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시인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 길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셔서 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하나님은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하루 분량만 거두게 하셨습니다. 많이 거두어도 남지 않았고, 적게 거두어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었다.”

왜 하루 분량만 주셨을까요? 내일의 양식도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에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내일도 하나님이 주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날에는 이틀 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나가지 않아도 되게 하셨습니다.

그날 양식은 썩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안식을 위해서, 불안을 내려놓게 하시기 위해서.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할 때, 내일은 내 손에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찬양은 내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셋째, 하나님은 은혜의 재판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우리는 날마다 작은 법정을 엽니다. 가정에서는 책임의 법정. 직장에서는 성과의 법정. 교회에서는 인정의 법정.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을 법정에 세웁니다. 가장 가혹한 판결을 내립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을 찬양할 때, 판결은 뒤집힙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정죄함이 없다.” “내가 너를 거룩하게 만들어 간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미 최종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찬양은 불평을 침묵시키고, 불안을 잠재웁니다.

결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때, 나는 통제자가 아님을 깨닫습니다.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할 때, 내일의 불안에서 벗어납니다. 은혜의 재판관을 찬양할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라”는 선언을 다시 듣습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복음에 대한 반응입니다.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길입니다. 그러니 불평이 몰려올 때,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불안이 몰려올 때, 구원자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죄책감이 몰려올 때, 은혜의 재판관을 찬양하십시오. 그때마다 은혜의 샘이 솟아,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 찬양으로 한 주간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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