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7일 주일예배
설교: 이지열 담임목사
서론
“내가 얼마나 변했는가?” 수련회에서 눈물로 기도하던 순간, 말씀에 가슴이 뜨겁던 시절, 새벽을 깨우며 찬송하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지금은 그만큼 뜨겁지 않다.” 그 순간 마음이 주저앉습니다. 답을 찾지 못하면 신앙은 뒷전이 됩니다. 눈앞의 문제와 일정만 우선됩니다.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야.”
씁쓸함이 스며듭니다.
어떤 이는 ‘선한 일’에서 신앙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그 열심은 곧 ‘나의 의’가 됩니다. 어떤 이는 ‘평판’에서 신앙을 확인합니다. 예배는 철저하지만, 주님과의 대화는 비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분주하지만, 내면은 절전 모드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뜨거운 감정, 선한 행위, 사람의 평판… 그 어떤 것도 토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꾸 다른 기초 위에 자신을 세웁니다.
왜 그럴까요? 본능적으로 “내가 괜찮다”는 증거를 찾기 때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의심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화만 확인하다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변화의 갈망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그리움도 있습니다. 내 힘으로 시작하면 율법주의지만, 은혜를 의지하면 성화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진짜 변화는 어디서 시작됩니까? 결심이 아닙니다. 복음은 “네가 더 나아져야 한다”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증거입니다.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라.”(5절) 변화는 위로부터, 복음으로부터, 성령으로부터 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손을 놓고 기다리면 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새사람으로 빚고 싶으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열고, 자라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단순합니다. 복음을 듣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성령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우리를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 열매였습니다. 그 은혜는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이 편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초대장입니다.
본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섭니다.
우상을 버린다는 것은 습관 교정이 아닙니다. 믿음의 대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을 비추실 때 시작됩니다. 우상은 시대마다 얼굴이 다릅니다. 인정, 통제, 권력, 안락… 겉으론 좋은 것 같지만 내 마음의 주인이 됩니다.
성령은 우상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허무함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게 나를 살린 게 아니구나.” 그 순간 예수님을 보여주십니다. 더 증명하라는 우상 앞에서 아무 증명 없이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보게 하십니다. 불안한 안전욕구 앞에서 죽음으로 안전을 보증하신 예수님을 깨닫게 하십니다. 소유에서 안식을 찾던 마음에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이 참 안식임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백이 터집니다. “예수님, 이제 제 인생의 생명선은 당신뿐입니다.” 비록 연약한 고백이라도 성령은 붙드셔서 새 삶으로 이끄십니다.
이것이 회심입니다. 회심은 결심이 아니라 주인 교체입니다. 관계가 바뀌면 삶의 리듬이 달라집니다. 예배와 말씀이 먼저가 되고, 감사와 소망의 말이 흘러나옵니다.
고난 속에서 삶의 해석이 변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고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배척당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복음은 고난을 제거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고난을 새롭게 해석하게 합니다. 세상은 고난을 피하거나 체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기쁨으로 해석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보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셨으니, 나는 버려지지 않았다.” 확신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인내가 생깁니다. 인내는 버티기가 아니라 하나님 읽기입니다. “주님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하실까?”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계속 소망하게 됩니다.
마지막 변화는 소망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잘 될 거야.” 그러나 근거는 조건입니다. 합격, 건강, 관계… 조건이 흔들리면 소망도 무너집니다.
그러나 복음의 소망은 다릅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정죄를 받으시고, 우리를 자녀로 보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이 길을 걸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이 길은 이미 안전하다. 따라오기만 해라.” 시험 결과를 기다릴 때, “결과가 나를 결정하지 않는다.” 검진 결과를 두려워할 때, “건강이 내 안전이 아니다.”
관계가 흔들릴 때, “사람의 반응이 내 가치를 정하지 않는다.” 성령은 순간마다 소망을 새기십니다. 그래서 불안 속에서도 믿음의 고백으로 살게 하십니다.
결론
복음은 우상에서 주님께로 옮기십니다. 복음은 고난을 새롭게 해석하게 하십니다. 복음은 날마다 예수님을 소망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로 나아오십시오. 복음은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내가 얼마나 변했는가?”가 아니라 “주님이 얼마나 신실하게 나를 붙드셨는가.” 이 은혜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