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낮추지 않으신 예수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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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예수님의 말씀은 때로 우리를 위로하기보다 흔들어 놓습니다. “이 말씀은 어렵도다.” 제자들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손실이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계약이 깨집니다. 직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는데 평가가 기대와 다릅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은 ‘왜 나는 아직인가’라는 질문 앞에 섭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는 ‘이렇게까지 기도했는데 왜 달라지지 않는가’라는 마음과 싸웁니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 믿음은 시험대에 오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은혜는 좋았지만, 주인은 부담스러웠습니다. 기적은 환영했지만, 자기 부인은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낮춰 사람을 붙잡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이 질문은 차가운 심문이 아닙니다. 사랑의 초대입니다. 베드로는 완전히 이해해서 남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만 알았습니다. “주께 영생의 말씀이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이해가 아니라 방향이 그를 붙잡았습니다. 설명이 아니라 사랑이 그를 머물게 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사업의 성패보다 더 깊은 질문이 있습니다. 직장의 자리보다 더 근본적인 자리가 있습니다. 합격 여부보다 더 중요한 소속이 있습니다. 자녀의 성취보다 더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나는 이해되지 않는 말씀 앞에서 떠나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해되지 않아도 사랑 때문에 머무는 사람인가?

복음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 떠날 때에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모두가 등을 돌릴 때 그분은 십자가로 걸어가셨습니다. 우리가 머물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먼저 머무셨기 때문입니다.

묵상과 성찰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 이후의 장면입니다. 배부르게 해 주실 때는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 하시자 떠났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일이 잘 풀릴 때는 감사가 쉽습니다. 매출이 오를 때는 하나님이 선하다고 말합니다. 자녀가 잘될 때는 기도가 응답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막히면, 침묵하면, 설명되지 않으면 마음이 식어버리지는 않습니까?

나는 예수님을 ‘함께 가는 주님’으로 믿는가, 아니면 ‘잘되게 해주는 분’으로 기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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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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