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시대, 성찬이 던지는 질문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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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어느 때보다 많이 먹고,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이상하게도 함께 먹는 법은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갑니다. 식당에 가면 각자 휴대폰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가족이 한 식탁에 앉아 있어도 서로의 하루를 묻지 않습니다. 회사에서는 함께 커피를 마시지만 경쟁하고, SNS에서는 수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마음을 나눌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배부른 시대인데 외로운 사람은 더 많아졌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음식을 나누는 기술은 배웠지만, 마음을 나누는 법은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속 고린도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같은 성찬상 앞에 모였지만, 같은 마음으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은 먼저 와서 배불리 먹었고, 가난한 사람들은 뒤늦게 와서 소외되었습니다. 함께 떡을 떼었지만, 서로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고전 11:20) 형식은 성찬이었지만, 실제로는 성찬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찬은 단순히 떡과 잔을 먹는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서로에게 흘려보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밀어내지 않으셨고, 연약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기다리신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찬을 기억하는 사람은 먼저 먹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먹는 사람입니다. 빨리 먹는 사람이 아니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너의 식탁에는 누가 빠져 있는가?"

가족일 수 있습니다.

상처받아 멀어진 친구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조용히 외로워하는 지체일 수 있습니다. 성찬은 교회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의식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비워 두고, 기다려 주고, 함께 밥을 먹는 일상 속에서도 성찬의 정신은 계속됩니다.

오늘 우리의 식탁이 경쟁의 자리가 아니라 환대의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이 누군가를 밀어내는 말이 아니라, 함께 앉게 하는 말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하루가 혼자 살아남는 하루가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내 곁에서 조용히 소외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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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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