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검색창을 열고, 알고리즘은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영상을 추천합니다. 성경 공부 자료도 넘쳐납니다. 설교를 듣고, 신학 강의를 보고, 묵상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아는 것은 많아졌는데, 삶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정보는 넘치는데 확신은 부족하고, 연결은 많아졌는데 관계는 더 외로워졌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나는 누구인가?", "왜 살아가는가?", "무엇을 위해 내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가장 중요한 질문 앞에서는 쉽게 흔들립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지식에 목마른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의미에 목마른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합니다. 남들보다 더 잘해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고, 더 특별해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를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특별한 경험을 자랑했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은사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 12:4) 은사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성령은 누군가를 더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어떤 은사를 받았을까?" 그러나 오늘 말씀은 먼저 이렇게 질문합니다.
"나는 받은 은사를 누구를 살리는 데 사용하고 있는가?"
은사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의 방향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는 경쟁의 재료가 아니라 사랑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두 같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지으셨고, 서로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혼자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이유는 실패해서가 아닙니다. 서로가 필요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비교 대신 연결을 선택하십시오. 인정받으려 애쓰기보다 누군가를 세워 주십시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나의 가치는 내가 가진 은사에 있지 않고, 나에게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시간과 재능, 경험은 누구를 세우고 살리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까?
은사는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선물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도록 맡겨진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