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배, 나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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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인류는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죄와 죽음,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현실은 가인의 삶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무려 '세 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첫째, 제물이 거절되었을 때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는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둘째,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는 "모른다"며 거짓말했습니다. 셋째, 징계를 내리실 때 순복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는 "벌이 너무 가혹하다"며 항변했습니다. 결국 가인은 하나님이 주신 용서와 보호의 '표'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나 '놋' 땅으로 갔습니다.

에덴의 동쪽으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불안을 감추기 위해 자기만의 '성'을 쌓았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대단했습니다. 목축, 예술, 기술등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문명은 발전했지만 인간성은 더욱 포악해졌고, 라멕처럼 살인을 노래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단 하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없었습니다. 반면 셋의 후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묵상과 적용

엎드리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잘못이나 실수가 드러날 때,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은혜를 구하나요? 아니면 상황을 탓하고 변명하며 뻣뻣하게 서 있나요? '엎드림'이 곧 회복의 시작입니다.

내가 쌓은 '성'은 불안의 반증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주시는 보호의 표를 믿지 못해 스스로 자신을 지키려고 성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쌓아 올리는 스펙, 재물, 업적이라는 성벽은 사실 내면의 깊은 불안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수단일 때가 많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나를 보호하려 합니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내 인생의 성벽을 높이 쌓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화려한 문명보다 소중한 '단 하나'를 붙드십시오.

겉모습이 화려해도 하나님이 빠진 인생은 혼돈의 재생산일 뿐입니다. 나의 삶에 겉으로 보이는 성취는 있지만, 정작 하나님을 부르는 간절한 예배가 식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 갖추었어도 예배가 없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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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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