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삼손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성문 문짝을 뽑아 산 위까지 메고 갈 만큼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적을 이길 힘은 있었지만, 자신의 욕망을 다스릴 힘은 없었습니다.
가사에서는 기생을 찾아가고, 이후에는 들릴라를 사랑합니다. 들릴라가 자신의 힘의 비밀을 집요하게 캐묻는데도 삼손은 그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보여주는 삼손의 더 깊은 위기입니다.
삼손이 갑자기 하나님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포기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씩 허락했습니다. 한 번쯤 괜찮다고 생각했고, 아직 힘이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고, 이번에도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신앙이 무너지는 일은 대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습니다. 기도를 한 번 하지 않았다고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작은 타협 하나가 즉시 인생을 망가뜨리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오히려 위험합니다.
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처음부터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 있습니다.
아직 예배드리고 있고, 아직 맡은 일을 하고 있고, 아직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 괜찮다고 판단합니다. 삼손도 그랬습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힘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는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다들 이렇게 사는데.” “이번 한 번뿐인데.” “내가 알아서 조절할 수 있어.” 큰 배교보다 이런 문장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를 조금씩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영적인 삶에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입니다.
삼손에게 필요했던 것은 더 강한 힘이 아니었습니다. 멈추어 서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삼손보다 더 나은 구원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삼손은 욕망 앞에서 자신의 힘을 잃어갔지만, 예수님은 유혹 앞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끝까지 붙드셨습니다. 삼손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멀어졌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으셨습니다.
삼손은 결국 결박당했지만, 예수님은 죄에 패배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스스로 결박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우리에게 “삼손처럼 살지 마라”라고만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먼저 말합니다.
“네가 스스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너를 대신하여 이기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신앙은 내 의지력을 증명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내 마음이 어디로 기울고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고, 다시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작은 타협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러나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했다고 절망하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넘어지지 않는 나에게 있지 않고,
넘어지는 나를 다시 붙드시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내가 요즘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가볍게 허용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은 내 마음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기도문
주님,
큰 실패만 두려워하고
작은 타협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아직 괜찮아 보인다는 이유로
제 마음이 주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방치하지 않게 하시고,
제 힘과 의지를 믿기보다
오늘도 저를 붙드시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소서.
넘어지지 않을 자신감보다
넘어질 수 있는 나를 아는 겸손을 주시고,
매 순간 주님의 부르심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