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어떤 순간에 진짜 모습이 드러날까요. 일이 잘 풀릴 때가 아니라, 오히려 잘 풀리기 시작한 이후입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고, 결과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묘한 긴장이 생깁니다.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고, 관계의 공기가 변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빠르게 반응합니다. 잃지 않으려 하고, 밀리지 않으려 하고, 정당함을 증명하려 합니다.
그래서 갈등은 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붙들고 사는지를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이삭의 삶이 그 지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평탄함이 아니라 갈등을 동반했습니다. 우물을 파면 다툼이 생기고, 또 옮겨 파면 다시 다툼이 생깁니다. 이삭은 계속 물러납니다. 이 장면을 단순히 “착하다”, “인내한다”로 읽으면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기준의 문제입니다. 이삭에게 중요한 것은 우물이 아니었습니다. 땅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붙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빼앗겨도 흔들리지 않았고, 양보해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반대로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붙들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관계를 희생합니다.
손해 보는 것 같으면 불안해지고, 밀리는 것 같으면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결과를 지키려 하지 않고 약속을 신뢰합니다. 그래서 싸워서 확보하는 대신, 물러나며 기다립니다. 그리고 결국 다툼이 멈춘 자리에서 “르호봇”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넓게 하셨다.” 중요한 것은, 이 고백이 경쟁에서 이긴 자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양보하고, 내려놓고, 기다린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삶을 넓히십니다.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약속인가, 아니면 내가 놓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붙들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