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출근길 단체 채팅방에 남기는 한마디, 회의 시간에 던지는 의견, 가족과 나누는 대화, SNS에 남기는 댓글까지. 하루에도 수백 번 말을 하고 수천 개의 메시지를 읽습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소통의 수단은 많아졌지만, 이해받는 경험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하는 데는 서툽니다. 그 래서 대화가 늘어날수록 관계는 깊어지기보다 피로해집니다. 오늘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놀라운 기준을 제시합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내 말이 누구를 세우고 있는가?"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한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은사가 사랑보다 앞서자,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열심을 냈습니다. 바울은 은사의 크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는 유익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을 추구하라"고 먼저 말합니다.
사랑은 나를 표현하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대가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관계를 세웁니다.
우리는 종종 '옳은 말'을 하지만, 상대는 '사랑받는 말'을 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정확한 지적이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해받는 경험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하루,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 능력과 재능이 나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뛰어난 사람보다 사람을 살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교회에서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 14:19) 하나님은 화려한 언어보다, 한 사람을 살리는 다섯 마디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오늘 당신의 말은 누구를 세우고 있습니까?
나는 오늘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증명하려고 말하는가, 아니면 누군가를 세워 주기 위해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