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보통 은사라고 하면 특별한 능력을 떠올립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 리더십이 있는 사람, 기도를 오래 하는 사람, 영적인 체험이 많은 사람을 보며 은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그 은사가 공동체를 세우고 있는가?"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없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은사가 너무 많은 교회였습니다. 문제는 은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은사의 방향이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은사를 통해 하나님보다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뜨거웠지만 혼란스러웠고,
열심은 있었지만 덕이 없었으며, 능력은 있었지만 공동체는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런 교회를 향해 말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고전 14:40)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질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성숙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20절)
왜 그럴까요? 질서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이유는 규칙을 몰라서가 아니라 성숙하지 못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상대방이 들어야 할 말을 먼저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큽니다.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세워지는 것을 기뻐합니다. 어린아이는 자유를 자기표현으로 사용합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유를 자기절제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성숙은 "내가 얼마나 많은 은사를 가졌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나를 절제할 수 있는가"에서 드러납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도 그렇습니다. 직장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도, 가정이 무너지는 이유도, 공동체가 어려워지는 이유도 대부분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만 중요하게 생각할 때, 자신의 감정만 우선할 때, 자신의 권리만 주장할 때 관계는 무너집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죄는 우리를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보다 사랑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보다
자기중심성이 너무 강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가진 은사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 말, 재능, 경험, 물질, 직분은 나를 빛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고 세우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평화의 하나님은 강한 사람이 많은 공동체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기 위해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공동체를 기뻐하십니다.
어쩌면 오늘 필요한 은사는 새로운 능력이 아니라 조금 덜 말하는 은사, 조금 더 듣는 은사, 조금 더 기다리는 은사, 조금 더 이해하는 은사인지도 모릅니다. 그곳에서 평화의 하나님이 드러납니다.
나는 지금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반대로 공동체를 힘들게 하고 있는 나의 자기중심성은 무엇입니까?
2,기도문 주님, 저는 종종 은사를 통해 주님을 드러내기보다 저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고, 내 생각이 받아들여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말은 많았지만 경청은 부족했고, 열심은 있었지만 사랑은 부족했으며, 능력은 사용했지만 사람은 놓칠 때가 많았습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자기중심성을 보게 하소서.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를 세우기 위해 말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내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기꺼이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평화의 하나님, 오늘도 제 삶의 무질서를 다스려 주옵소서.
제 생각과 감정, 말과 행동, 관계와 선택 가운데 주님의 질서를 세워 주시고, 제가 있는 자리마다 사람들이 더 안전해지고, 더 위로받고, 더 하나님께 가까워지게 하옵소서.
제가 가진 모든 것이 저를 위한 무기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는 선물이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