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같은 생각에 붙잡혔습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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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사기 4장은 불편한 한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또.’ 우리도 이 단어가 싫습니다.

또 화를 냈습니다. 또 미뤘습니다. 또 같은 생각에 붙잡혔습니다. 또 하나님보다 현실을 더 크게 보았습니다. 한두 번의 실패보다

반복되는 실패가 사람을 더 절망하게 합니다.

“나는 왜 아직도 이럴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의 ‘또’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다시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충분히 달라진 뒤가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진 뒤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드보라를 세우시고, 다시 말씀하시고, 다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다시 잘해 볼 기회를 얻었다는 소식보다,

우리가 또 무너진 자리에도 하나님이 다시 찾아오셨다는 소식에 가깝습니다.

바락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지만 그의 눈에는 시스라의 철 병거가 너무 크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가지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락의 두려움을 칭찬하지 않으시면서도 그의 연약함 때문에 구원의 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은혜는 우리의 불신을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믿음이 완벽해질 때까지 우리를 밖에 세워 두지도 않습니다.

오늘 아침, 자신의 반복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빨리 낙심하지 마십시오.

복음은 “이번에는 제대로 해내라”는 압박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붙드는 힘보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놓지 않으시는 힘이 더 크다는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갈 수 있습니다. 잘해서가 아닙니다.

또 넘어지는 우리보다

다시 일으키시는 은혜가 더 끈질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즘 반복되는 어떤 모습 때문에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습니까?

그 자리에 복음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기도문

주님,
또 같은 자리에서 넘어졌다고
저 자신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제 반복되는 실패보다
주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을 믿게 하시고,
오늘도 저를 다시 부르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한 걸음 순종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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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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