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납니다. 모든 것이 잘될 때는 누구나 친절할 수 있습니다. 여유가 있을 때는 누구나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손해를 봐야 할 때, 억울함을 감당해야 할 때, 내가 대신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올 때, 그때 비로소 사랑은 말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마지막으로 시험합니다. 베냐민의 자루에 은잔을 넣어 두고,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웁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냐민만 남겨 두고 너희는 평안히 돌아가라.” 이 제안은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자신들은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동생을 잃어도 됩니다.
예전처럼 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자신들은 편안히 돌아갈 수 있습니다. 과거의 형제들이었다면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잔이 발견되자 형제들은 옷을 찢고, 모두 함께 성으로 돌아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쟤가 잘못했으니 쟤 혼자 책임져야지.” 아무도 계산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도 바쁜데 여기까지 책임질 필요가 있나?” 아무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이번만큼은 나부터 살자.”
모두 함께 돌아갑니다. 이것이 변화의 증거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랑을 감정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책임의 깊이입니다. 사랑은 함께 웃을 때보다 함께 울 수 있을 때 증명됩니다.
사랑은 내가 손해 보지 않을 때가 아니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곁에 남아 있을 때 드러납니다.
사랑은 “좋아한다”는 말보다 “혼자 두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의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증거가 우리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변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보내라. 내가 남겠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정죄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대신 서셨습니다.
우리가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도록 그분이 묶이셨습니다. 우리가 살아날 수 있도록 그분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복음은 이것입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나 대신 남아 주신 사랑.
오늘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가보다, 누군가의 눈물 속에 끝까지 함께 머물 수 있는가? 편안할 때 곁에 있는 사람인가, 대가를 치러야 할 때도 떠나지 않는 사람인가?
나는 지금 누구의 어려움 앞에서 조용히 거리를 두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남아 주신 것처럼, 오늘 내가 끝까지 함께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