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하겠지"라는 회피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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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흔히 공동체가 무너지는 이유를 환경에서 찾습니다. 사람이 부족해서, 관계가 어색해서, 서로 성격이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이유가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대부분 한 발 물러섭니다. “왜 내가 나서야 하지?” “괜히 말했다가 오해받으면 어떡하지?” “내 일도 바쁜데.” “누군가 하겠지.”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이 많아서 세워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용기 내어 한 걸음 앞으로 나올 때 세워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유다는 그렇게 합니다. 과거의 유다는 동생 요셉을 팔아넘기는 데 동참했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족의 아픔을 외면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베냐민이 종이 될 위기에 처하자, 유다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슬픔을 이야기합니다. 동생을 향한 사랑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아이 대신 내가 종이 되겠습니다.” 이것이 진짜 변화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눈물의 양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내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누군가를 살리려는 선택으로 드러납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책임은 말이 아니라 희생입니다. 가정을 세우는 사람도, 교회를 세우는 사람도, 직장을 건강하게 만드는 사람도 결국 이런 사람입니다.

문제를 보면서 외면하지 않는 사람. 누군가의 아픔을 자기 일처럼 느끼는 사람. 필요하다면 자신이 손해 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런데 사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는 손해 보기를 싫어하고, 오해받기를 두려워하며, 내 시간과 감정을 지키는 데 익숙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말씀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를 위해 대신 종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값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 대신 내가 책임지겠습니다.”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해 자신을 내어놓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경험할 때 비로소 변합니다. “내가 보호받았으니, 이제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다.” “내가 용서받았으니, 이제 누군가를 품을 수 있다.” “내가 사랑받았으니, 이제 손해 보며 사랑할 수 있다.” 오늘 하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공동체에서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세우는 사람인가?”

나는 오늘 누구를 위해 한 걸음 앞으로 나서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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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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