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묵상 시리즈(1) 더 이상 나를 증명하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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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트립의 은혜묵상(1) 읽기

고린도후서 5장 14~21절 읽기

복음중심적 해설 묵상 & 묵상질문

폴트립의 은혜묵상(1) 읽기

고린도후서 5장 14~21절

제목 : 더 이상 나를 증명하며 살지 않아도 됩니다 본문 | 고린도후서 5장 14–21절 개역개정 14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절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절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19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절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과 은혜묵상을 통해 읽는 묵상

우리는 위로를 보통 상황이 나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형편이 좋아지고, 사람에게 인정받고, 불안하던 일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려야 비로소 마음을 놓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주는 가장 깊은 위로는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가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19절) 죄를 지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를 실망스럽게 바라보실 것 같고, 조 금 더 나아진 뒤에야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정반대를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켰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실패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감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용서한 죄를 다시 꺼내 우리의 얼굴에 던지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것이 복음의 수직적인 위로입니다.

그리고 이 위로가 깊어질수록 우리는 사람에게서 얻는 수평적인 위로에 덜 매달리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인정해 주어야 괜찮고, 일이 잘되어야 안심되고, 내 계획대로 되어야 평안한 삶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집니다. 그런데 은혜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받아 주실 뿐 아니라 바꾸어 가십니다.

그래서 15절은 말합니다.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은혜는 “괜찮아, 그대로 살아도 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먼저 “너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졌다”고 말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갑니다. 17절의 새로운 피조물이란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삶의 중심이 바뀌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전에는 “나는 어떻게 될까?”가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는 “이 자리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묻게 됩니다.

복음은 우리를 숨지 않게 하고, 동시에 그대로 머물러 있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고, 지금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가시는 것도 하나님입니다.

나를 받아 주신 것도 은혜이고,

오늘 나를 바꾸어 가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나 자신을 증명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아니라,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에 기대어 조금 덜 나를 위해 살아가는 하루이면 좋겠습니다.

나는 요즘 사람의 인정, 성취, 돈, 관계, 상황의 안정이라는 ‘수평적인 위로’ 가운데 무엇이 있어야 괜찮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그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실제로 내 마음의 위로가 되고 있습니까?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는 말씀 앞에서, 오늘 나의 말과 관계와 선택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달라져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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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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