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고난주간 요한복음 18:39~19:16
사람은 위기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한 가지를 찾습니다.
“누가 나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가”
그날도 그 질문이 있었습니다. 로마의 압제, 불안한 현실, 무너질 수 있는 삶.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설명이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칼을 거두라, 십자가를 지라 이 말씀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맞지 않았습니다.
지금을 버티게 해주지 못하는 진리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바라바는 분명했습니다. 싸울 수 있고, 저항할 수 있고, 분노를 대신 터뜨려 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선택은 자연스럽게 흘러갑니다.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지금 나를 지켜줄 수 있는가”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복음은 인간의 기대를 뒤집습니다. 그들은 자기를 위해 싸워줄 사람을 원했지만 하나님은 자기를 위해 죽어줄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해결해 줄 힘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죄를 해결하는 십자가를 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문제를 피해가는 길이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끊는 방식입니다.
나는 지금 위기를 해결해 줄 예수를 찾고 있는가, 아니면 나를 근본적으로 살리시는 예수를 믿고 있는가?
나는 내 삶을 지켜줄 힘을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내 죄를 끊어내는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