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누구나 '기다림'이라는 시험대에 오릅니다. 약속된 승진, 간절히 바라는 자녀, 해결되지 않는 재정 문제, 혹은 나아질 기미가 없는 관계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부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신의 약속을 받은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만 갔습니다.
불안이 만들어낸 '합리적인' 대안 기다림이 길어지자, 아내 사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의 침묵'을 자신의 '계획'으로 채우려 합니다. 당시 문화적으로 통용되던 방법, 즉 여종 하갈을 통해 대를 잇겠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습니다. 남편 아브람도 이 제안에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나님이 안 주시니, 우리가 힘을 합쳐 도와드려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불안이 빚어낸 '인생의 지름길'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계산은 딱 맞아떨어지는 듯했습니다. 여종 하갈은 곧바로 임신했습니다. 하지만 그 '성공'은 곧장 가정의 재앙이 되었습니다. 임신한 여종은 주인을 무시하기 시작했고(교만), 상처 입은 주인은 여종을 가혹하게 학대했습니다(분노). 문제를 해결하려던 시도가 오히려 관계를 파탄 내고, 가정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그곳에는 축복이 아니라 엉킨 실타래가 기다리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하갈은 임신한 몸을 이끌고 광야로 도망칩니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 그 삭막한 사막 한가운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 제공자였던 아브람과 사래에게는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도망친 여종 하갈에게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고통을 들으시고 위로하십니다.
하갈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새로운 이름을 지어드립니다. "브엘라해로이(나를 살피시는 살아 계신 이)" 실수투성이인 인간들이 만들어낸 비극 속에서도, 하 나님은 도망자를 찾아내시고 "내가 너를 보고 있다, 내가 너를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과 성찰 3가지
나의 조급함은 무엇을 만들고 있나요?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어"라며 내가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는 일은 없나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기보다, 내 방식과 세상의 상식으로 해결하려다가 오히려 일이 꼬이고 마음이 상한 영역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나는 갈등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나요?
문제가 생겼을 때 아브람은 방관했고, 사래는 학대했으며, 하갈은 도망쳤습니다. 지금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벌어지는 갈등 속에서 나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감정적으로 남을 찌르거나, 혹은 문제로부터 도망치고 있지는 않나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나요?
아무도 내 사정을 모른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억울하고, 외롭고, 버림받은 것 같은 그 순간에도 '나를 지켜보시는 시선'이 있음을 믿나요? 나의 실수로 빚어진 광야 같은 상황에서도 찾아오시는 그분의 자비를 의지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