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의 끝에서 다시 시작을 꿈꾸며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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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아브람의 99세. 이스마엘을 낳고 13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성경은 이 13년 동안 하나님이 침묵하셨다고 암시합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습니다. 처음 신앙을 가졌을 때의 뜨거움은 식었고, 기도 제목 노트는 낡아갑니다. 취업 준비가 길어질 때, 승진에서 계속 누락될 때, 간절히 원하던 아이가 생기지 않을 때, 혹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관계나 질병 속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정말 계신 건가요? 내 기도를 듣고는 계신가요?"

아브라함에게 13년은 '체념이 익숙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마엘이나 잘 키우며 살자. 더 이상의 기적은 내게 없어." 우리도 비슷합니다. " 그냥 적당히 살자. 기적은 남들 이야기야." 현실과 타협하고 꿈을 접어서 서랍 깊숙이 넣어두는 그 순간, 바로 그때가 영적인 99세입니다.

그 무기력한 99세의 오후, 하나님이 침묵을 깨고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이 기가 막힙니다. 100세를 앞둔 노인에게 "너는 이제 '열국의 아버지(아브라함)'다"라고 하십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만년 과장으로 퇴직을 앞둔 사람에게 "너는 글로벌 기업의 CEO다"라고 명함을 파주시는 격이고,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너는 마라톤 완주자다"라고 이름표를 붙여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은 초라한데, 하나님이 부르시는 나의 이름은 너무나 거창합니다. 우리는 당혹스럽습니다. "하나님, 제 꼴을 좀 보세요. 이게 가당키나 합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현재의 내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실 내 모습'**을 보십니다. 세상은 스펙과 통장 잔고로 내 이름을 정의하지만, 하나님은 약속으로 나를 정의하십니다. 당신의 오늘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름만 바꾸지 않으시고, 살을 베어내는 '할례'를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99세에 그 고통을 감내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할례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힘으로 하려는 의지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지난 13년 동안 아브라함은 자기 방식대로(이스마엘) 문제를 해결하려 했습니다. 할례는 "이제 내 힘, 내 계획, 내 잔머리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합니다"라는 처절한 항복 선언입니다.

우리 삶의 할례는 내가 그토록 의지하던 통장을 내려놓는 것일 수도, 자녀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는 것일 수도, 나를 방어하던 자존심을 꺾고 사과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살을 베는 것처럼 아프고 쓰라립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은 그날 바로 순종합니다. 머리로 계산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 나이가 몇인데...', '사람들이 비웃을 텐데...', '아픈데...' 핑계 댈 거리는 수백 가지였습니다. 하 지만 그는 계산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계산이 너무 빠르기 때문 아닐까요? 오늘, 당신의 99세와 같은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 지금 당신이 잘라내야 할 불신은 무엇입니까? 지금 당신이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이름은 무엇입니까? 체념의 13년을 끝내고, 약속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믿음의 순종으로만 열립니다.

묵상과 질문

침묵 속에서도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침묵을 부재로 오해합니다. 내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13년처럼 길게 느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빚어가고 계셨습니다. 99세, 인간의 가능성이 완전히 제로가 된 그 순간이 하나님께는 시작의 순간이었습니다.

나의 삶에서 지금 '죽은 것 같이' 느껴지는 영역은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곳에,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초대하고 있습니까?

새로운 이름, 새로운 정체성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상황을 바꾸시기 전에, 그의 존재(이름)를 먼저 바꾸셨습니다. 상황이 변해야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질 때 상황을 돌파할 힘이 생깁니다. 세상은 우리를 '실패자', '평범한 사람', '늙은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열국의 아버지',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부르십니다.

나는 나 자신을 세상의 시선으로 정의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으로 정의하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시고 싶은 '새로운 이름'은 무엇일까요?

믿음은 즉각적인 순종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당일에" 순종했습니다(창 17:23). 머리로 계산하고, 상황을 재고, 내일로 미루지 않았습니다. 할례는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나의 옛 자아, 나의 불신, 나의 고집을 잘라내는 아픔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아픔을 통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약속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이 오늘 내게 요구하시는 '영적 할례'는 무엇입니까? 내가 지금 당장 끊어내야 할 습관이나, 순종해야 할 작은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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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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