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결국, 자기가 다스리지 못한 곳에서 무너집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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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보통 인생의 실패가 능력이 부족해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똑똑했으면, 조금 더 돈이 있었으면, 조금 더 좋은 환경이었다면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야곱은 죽기 전 아들들을 축복하며 그들의 미래를 말해 줍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재능”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다스리지 못했는지를 더 깊이 보십니다.

르우벤은 장자였습니다. 능력도 있었고 위치도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를 향해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는 “물의 끓음 같다”고 평가받습니다. 왜입니까? 욕망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충동이 평생의 방향을 무너뜨렸습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뜨거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의감도 있었고 열정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감정은 결국 폭력이 됩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들을 향해 흩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서운 건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잘하는 것”보다 “무너지는 지점”을 더 깊이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가 가장 약한 부분에서 무너집니다. 돈 때문에 무너지고, 인정욕 때문에 무너지고, 외로움 때문에 무너지고, 분노 때문에 무너지고, 비교 때문에 무너집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어떤 사람은 “무시당하는 상황” 하나에 완전히 흔들립니다. 어떤 사람은 관계가 끊어질 것 같은 불안 하나에 자존감 전체가 무너집니다.

왜 그럴까요? 그 부분이 아직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네 약점을 부끄러워하라”가 아니라 “그 무너지는 지점까지 하나님께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것은 유다입니다. 유다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실패도 많았고 수치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왜 유다에게 왕의 약속이 주어졌을까요? 유다는 점점 자기중심적인 사람에서 희생하는 사람으로 변해 갔기 때문입니다.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섰던 사람. 자기 생존보다 형제의 회복을 붙들기 시작한 사람.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왕의 길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을 사용하시기보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왜 나는 반복해서 같은 부분에서 넘어질까?” 질문합니다. 그런데 어쩌면 하나님은 그 반복되는 약점을 통해 우리를 절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계신지 모릅니다.

내 의지로는 안 되고, 내 결심으로도 안 되고, 내 자존심으로도 안 되는 지점. 바로 그곳에서 사람은 비로소 은혜를 찾기 시작합니다.

십자가는 강한 사람의 상징이 아닙니다. 자기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들이 붙드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완벽한 척하는 사람보다 무너진 채 하나님께 오는 사람을 붙드십니다.

나는 요즘 무엇을 가장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약점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붙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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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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