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번도 괜찮았던 적이 없습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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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람은 잘못한 사실보다 잘못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더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보다 감추고, 마음이 무너지면 도움을 구하기보다 괜찮은 척합니다.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처럼, 가정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교회에서는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 합니다.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실제 힘보다 때로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애굽도 그랬습니다. 애굽은 강한 군대와 풍부한 자원, 오랜 역사와 문명을 자랑하던 나라였습니다. 여러 나라가 위기를 만날 때마다 애굽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저 나라가 우리를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의지하던 힘을 흔드십니다.

애굽을 없애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애굽이 자신들의 힘으로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흔드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흔드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처럼 의지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내기 위해 흔드십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내가 무엇을 믿는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획이 틀어지고, 인정받지 못하고, 의지했던 사람이 멀어지고, 통장 잔액이 줄어들면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보다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었구나.” 하나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시는 목적은 애굽을 영원히 밀어내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은 놀랍게도 애굽이 하나님을 알고,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백성이라 불리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끝내기 위한 심판이 아니라, 돌아오게 하기 위한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처를 드러내시지만 치료하기 위해 드러내시고, 우리의 가짜 안전을 무너뜨리시지만 참된 피난처를 주시기 위해 무너뜨리십니다. 이사야는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며 애굽의 수치가 드러날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자랑하던 힘이 벗겨지고, 감추고 싶던 연약함이 드러날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벗겨지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실력 없다는 사실, 마음이 약하다는 사실, 믿음이 흔들린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감추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옷 벗김을 당하시고 우리의 수치를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폭로하여 조롱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자기 몸에 짊어지시고, 자신의 의로 우리를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면을 벗기실 때 그것은 버리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더 이상 가면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초대입니다. 오늘 삶이 조금 흔들리고 있다면, 그것을 실패라고만 해석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하나님께서 나를 무너뜨리고 계신 것이 아니라, 나를 붙잡고 있던 거짓된 의지처를 떼어 내고 계신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려고 벗기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다시 입혀, 참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흔들릴까 두려워 감추고 있는 나의 연약함은 무엇이며, 하나님보다 더 안전하다고 믿고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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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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