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잘 풀릴수록, 기억은 왜곡되기 쉽습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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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화요일쯤 되면 한 주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미뤄 두었던 일을 처리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수습하며, 사람들의 요구에 대응합니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다 보면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옵니다. ‘결국 내가 정신 차려야 일이 돌아간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판단을 잘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오늘 본문의 앗수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앗수르는 강한 군대와 뛰어난 전략으로 여러 민족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앗수르를 가리켜 “내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십니다. 앗수르가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들린 도구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자신이 도구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다.”

앗수르의 문제는 열심히 싸웠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능력이 있었다는 것도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을 자신에게서 나온 힘으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기억은 매우 선택적입니다. 일이 잘 풀리면 도움받았던 순간은 흐려지고, 내가 애썼던 순간만 선명해집니다. 누군가 길을 열어 준 일, 예상치 못한 기회, 나를 견뎌 준 사람, 실패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배경으로 밀려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인생의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씁니다. ‘내가 여기까지 왔다.’

교만은 자신을 크게 말하는 태도 이전에, 자기 인생의 설명에서 은혜를 삭제하는 해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실제 삶을 설명할 때는 하나님을 빼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자기 해석은 관계에도 영향을 줍니다. 내가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믿기 시작하면, 나 보다 느린 사람은 게으르게 보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부담스럽게 보이며, 실패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앗수르의 자기 확신이 다른 민족을 짓밟는 폭력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우리의 작은 교만도 누군가를 쉽게 판단하고 함부로 대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도끼가 아무리 날카로워도 스스로 나무를 벨 수 없습니다. 막대기가 아무리 단단해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지혜와 힘, 경험과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수고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고를 가능하게 한 생명과 기회와 사람과 시간은 모두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능한 사람처럼 살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을 없애려 하시는 것이 아니라,

능력의 주인을 바로 알게 하십니다.

내가 주인이 되면 능력은 사람을 누르는 도구가 되지만,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알면 능력은 사람을 살리는 선물이 됩니다. 복음에서 우리는 앗수르와 정반대의 왕을 만납니다.

앗수르는 빌린 힘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사람들을 짓밟았지만,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가지셨음에도 자신을 높이지 않으시고 약한 자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제거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십자가를 구원의 길로 바꾸셨습니다. 십자가는 악이 강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악이 마지막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부정합니다. 사람의 교만과 폭력조차 하나님의 주권을 넘어설 수 없으며, 하나님은 악을 악이라 심판하시면서도 그 악을 넘어 구원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날에도 교만할 필요가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날에도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만과 불안은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 같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려 있다.’

일이 잘되면 교만해지고, 일이 어긋나면 무너지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내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내가 가진 힘을 증명하는 데 사용하지 말고, 누군가를 살리는 데 사용하십시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기보다, 여기까지 붙들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들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손은 우리를 함부로 휘두르는 손이 아니라, 못 자국 난 사랑의 손입니다.

지금 나는 어떤 영역에서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들의 도움을 지워 버리고 있으며, 그 때문에 누구를 쉽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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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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