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무엇을 허무시고, 무엇을 다시 세우시는가

이지열은혜이음교회

약 1,071자읽는 데 3분

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보통 성전을 조용한 장소로 생각합니다. 질서 있고, 정돈되어 있고, 문제가 없어 보이는 공간 말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이 마주하신 성전은 달랐습니다. 그곳은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이 오가고, 체계가 있었고, 모두가 익숙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성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길이 막혀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배를 돕기 위해 만든 구조가 어느새 예배를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조용히 타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조금씩 고치자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뒤엎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장면이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에도 이렇게 “잘 돌아가고 있는 성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는 분들에게는 성과와 안정이라는 이름의 성전이 있습니다. 직장인에게는 평가와 인정, 자리라는 성전이 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스펙과 결과가 전부가 되어버린 성전이 있습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는 아이의 성공이 곧 내 인생의 의미가 되어버린 성전이 있습니다. 그 성전들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하나님을 대신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묻습니다. “이 성전이 정말 누구의 성전이냐”고. 사람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성전을 짓는 데 46년이 걸렸는데, 네가 허물겠다는 말이냐”고 반문합니다. 그 말 속에는 우리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쌓아온 삶입니다.”

“이 방식 말고는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걸 무너지게 하면, 나는 무엇으로 서야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성전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세우실 성전입니다. 허물어야 다시 지을 수 있는 성전. 성과가 아니라 십자가 위에 세워질 성전. 내가 지키는 성전이 아니라, 주님이 대신 무너지고 다시 세우실 성전.

복음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비우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 삶의 중심을 바꾸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묵상과 질문 3가지

예수님은 내 삶에서 문제가 많은 부분보다 문제 없어 보이는 중심을 먼저 건드리십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안전하다고 붙들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지금 내 삶에서 “이건 없어지면 안 된다”고 여기는 성전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내가 오랫동안 쌓아온 구조를 한순간에 허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다시 지으시기 위한 은혜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그 성전을 뒤흔드신다면, 나는 순종하려 하겠습니까, 아니면 방어하려 하겠습니까?

내가 지키는 성전에서는 늘 불안이 남지만, 주님이 세우신 성전에서는 무너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소망이 남습니다. 내가 지키려 애쓰는 삶의 구조와 주님이 세우시려 보시는 삶의 중심은 어디에서 어긋나고 있습니까?

댓글

댓글을 불러오는 중

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이지열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