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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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우리는 삶에서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보이는 결과, 손에 잡히는 증거, 지금 당장 확인되는 안정. 그래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면, 이미 보여야 하는 것 아닌가. 믿음이 있다면, 상황도 따라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창세기 23장은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줍니다. 사라는 죽었습니다. 약속의 땅에서 죽었지만, 약속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나그네와 거류민”입니다. 이 장면은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약속을 받은 인생이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행동은 예상과 다릅니다. 그는 절망하거나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땅을 삽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한 값으로, 협상 없이. 이건 단순한 장례 절차가 아닙니다. 이건 선언입니다. “나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이 땅이 약속의 땅임을 믿는다.” 여기서 신앙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신앙은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보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자리에서도 그 약속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존재입니다. 상황이 안정되면 믿고, 흔들리면 의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보다 “지금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반대로 살아갑니다. 그는 현실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준으로 현실을 재해석합니다. 그래서 아직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자기 무덤을 삽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보면 이상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보면 가장 정확한 선택입니다.

이 장면은 결국 십자가로 이어집니다. 아브라함은 죽음 앞에서 땅을 삽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영원한 땅을 여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을 붙들고 미래를 현재처럼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을 실제로 이루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현실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약속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인가, 아니면 현재의 상황인가. 그리고 나는 보이지 않는 약속을 위해 실제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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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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