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창세기 24:50~67
우리는 보통 하나님의 뜻을 ‘이해’한 다음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
리브가는 미래를 본 적이 없습니다. 이삭을 만난 적도 없습니다. 가나안이 어떤 곳인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움직입니다. 왜입니까? 이미 한 가지는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
이 확신이 생긴 순간, 더 이상의 지체는 믿음이 아니라 불신의 또 다른 형태가 됩니다.
믿음은 모든 가능성을 계산한 후에 내리는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맞다는 전제 위에서
지금 움직이는 결단입니다.
리브가는 완벽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완전한 방향을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한 문장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라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선언이 됩니다. “내가 가겠나이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더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영역은 어디인가?
내가 지금 기다리는 것은 정말 분별을 위한 기다림인가, 아니면 책임을 피하기 위한 지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