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직장인들은 안정을 원하지만, 회사는 안정 대신 성과를 요구합니다. 청년들은 미래를 준비하지만, 준비할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집니다. 열심히 살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걱정이 찾아옵니다. 취업을 하면 이직을 고민하고, 결혼을 하면 가정을 걱정하고, 자리를 잡으면 뒤처질까 두려워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분명 예전보다 많은 것을 가졌는데, 마음은 더 단단해진 것이 아니라 더 쉽게 흔들립니다.
시편 15편도 사실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는가?"라는 종교적인 질문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읽어 보면, 이것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시편이 흔들리지 않는 비결로 능력이나 성공을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도 아니고, 더 똑똑한 사람도 아닙니다. 정직함을 잃지 않는 사람, 손해 앞에서도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 이익보다 양심을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왜일까요? 성경은 인간이 흔들리는 이유가 바깥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상황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내 삶을 붙들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성과가 무너지면 내 존재까지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흔들리면 삶 전체가 흔들리는 이유는, 어느새 그것들이 내 삶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15편의 의인은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
히려 흔들리는 순간에도 끝까지 놓지 않는 기준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은 우리에게 "더 강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믿음을 요구하시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 존재인지를 먼저 인정하셨습니다. 베 드로가 넘어질 것을 아셨고, 제자들이 도망갈 것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이제 흔들리지 말라"는 명령이 아니라, "네가 흔들려도 내가 너를 붙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일 앞에서 마음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능력이 아니라, 흔들리는 순간마다 다시 하나님께 기대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요즘 내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잃어도 여전히 나를 붙들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