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는 경지가 없습니다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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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의 길엔 완성이란 없습니다. 언제든 넘어질 수 있고 언제든 타협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로 읽는 묵상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공동체는 다시 이완되고 혼합주의, 안일주의, 기회주의가 자리 잡았습니다. 성벽을 세울 때의 뜨거운 신앙과 회개는 사라진 듯합니다. 신앙의 길에는 '완성'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더 깊이 읽는 묵상

혼합주의

백성들이 율법책을 듣고 잘못을 깨달아 모압과 암몬 사람들을 분리했습니다. 말씀이 중단되면 언제든 이방인과 섞여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기회주의

제사장 엘리아십이 대적 도비야와 내통하며 성전 뜰에 방을 내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개인의 입신과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하는 타협은 공동체를 어렵게 합니다.

안일주의

느헤미야가 떠나자 십일조와 헌물 창고를 도비야에게 내줄 정도로 영적으로 둔감해졌습니다. 정작 레위 사람들은 몫을 받지 못해 흩어졌습니다.

느헤미야가 돌아와 도비야의 세간을 내던지고 방을 정결하게 하며, 레위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았습니다. 충직한 자들을 세워 몫을 분배하게 했습니다.

묵상질문과 성찰

내 안에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세상의 방식(혼합주의)은 없습니까?

혹시 나도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어때?"라며 죄에 대해 둔감해진 영역은 없습니까? 오늘 내가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끊어내야 할 세상의 습관이나 관계는 무엇입니까?

공동체의 유익보다 나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회주의)

나는 직장이나 가정, 교회에서 나의 편안함이나 성공을 위해 신앙적 양심을 슬그머니 내려놓은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계셔야 할 내 마음의 가장 중요한 방을 나의 욕심(도비야)에게 내어주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다시 거룩함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당장 '던져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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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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