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이유를 묻지만, 축복의 이유를 묻지는 않습니다. 축복에는 감사하지만, 고난에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인과응보의 세계관에서 설명할 수 없는 상황들이 닥칠 때 실존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몇이나 될까요?
환난 중에도 절망하지 않고 다윗은 소망이신 주를 향합니다.
이야기로 읽는 묵상
사람들은 묻습니다. "다윗이여, 당신은 고난 중에도 어떻게 노래할 수 있습니까? 칼날이 당신을 겨누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데 어찌 감사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까?" 나는 대답합니다. 나의 감사는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비가 그쳐서 감사한 것이 아니요, 전쟁이 끝나서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수많은 신들과 권력자들 앞에서 나는 오직 한 분, 당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나의 감사는 의무가 아니라, 내 영혼이 터트리는 전심의 고백입니다.
나의 확신은 이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정하신 그 계획을 반드시, 기필코 완성하실 것입니다. 내 인생이 미완성으로 끝나지 않음은 당신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여, 당신의 손으로 지으신 이 작은 인생을 결코 버리지 마소서. 나는 오늘도 폭풍 속에서 당신의 신실하심을 노래합니다.
더 깊이 읽는 시편 138편의 메세지
감사
예의나 의무로가 아니라 마음과 뜻 다해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합니다. 다른 신들이나 우상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높입니다. 현실의 안정이나 평탄함에서 기인한 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친히 일하고 계심을 믿고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선포
개인의 정서적 반응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공적인 선언으로써 감사를 올립니다. 모든 민족과 권세자들이 하나님의 길을 알게 될 것이며, 겸손한 자는 높이시고 교만한 자는 낮추시는 정의와 공평이 드러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확신
끝없는 전쟁과 살해의 위협, 상실과 이별을 겪은 다윗이지만, 일관적으로 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나아갑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끝까지 다윗과 함께하시는 것처럼 다윗도 신실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묵상과 성찰
(1) 최근 내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가 바라는 특정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놓쳤기 때문입니까? 이번 한 주,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제목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낮아짐의 은혜에 대하여
(2) 지금 내 삶에서 가장 낮아졌다고 느끼거나,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약점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기준으로는 실패처럼 보이는 그 자리가, 오히려 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거룩한 빈터'가 될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완성하심에 대하여
(3) 내 인생의 작가이신 하나님께서 지금 집필하고 계신 내 인생의 챕터는 어떤 내용인 것 같습니까? 엉망으로 꼬인 것 같은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이 결국 완성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 내가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내딛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