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기드온은 왕이 되라는 제안을 거절합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틀린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정확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후의 삶은 묘합니다. 금 귀고리를 받고, 왕이 입던 옷과 장식을 취하고, 많은 아내와 칠십 명의 아들을 두고,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 ‘내 아버지는 왕이다’라고 짓습니다.
기드온은 왕이라는 이름은 거절했지만, 점점 왕의 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욕망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욕망의 이름만 바꾸기도 합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책임감’이라고 부르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꼼꼼함’이라고 부르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소신’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자기 마음을 아는 일은 어렵습니다.
욕망은 언제나 “나는 이것을 원한다”고 정직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때로는 좋은 이유를 입고 돌아옵니다.
기드온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왕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다만 하나씩 허용했을 것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것은 내가 수고한 대가니까. 이것쯤은 누려도 되겠지. 그렇게 왕관은 쓰지 않았지만 삶에는 조금씩 왕의 문법이 생겼습니다.
우리 삶도 큰 결심보다 이런 작은 허용을 통해 방향이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늘은 “나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보다 조금 더 깊은 질문이 필요합니다.
나는 요즘 무엇을 좋은 이유로 포장하고 있는가?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때로 더 그럴듯한 이름을 얻어 돌아옵니다.
기도문
주님,
제가 붙들고 있는 것을
좋은 이유로 포장하지 않게 하소서.
말보다 삶을 살피게 하시고,
제가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했던 마음까지
주님의 빛 앞에 정직하게 놓게 하소서.
오늘 제 선택 속에
주님의 다스림이 실제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