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명절은 끝났습니다. 식탁은 치워졌고, 선물은 정리되었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남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갈릴리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를 먹었습니다. 배는 불렀고, 기적은 선명했고, 분위기는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들은 기적은 받아들였지만, 그 기적을 일으킨 존재는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떡은 삼켰지만, 보이지 않는 생명은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은 더 깊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그 말은 불편합니다. 상징이 아니라 참여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관람이 아니라 연합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매출로 자신을 확인합니다. 직장인은 성과로 존재를 증명합니다. 취업 준비생은 합격 통지로 자신을 평가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결과로 안심을 얻습니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먹고 삽니다. 성과를 먹고, 인정에 기대고, 비교를 삼키며 하루를 버팁니다.
그러나 그것은 배를 채울 수는 있어도 존재를 살리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는 것은 결국 우리를 닮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비교를 먹으면 불안이 자라고, 성과를 먹으면 두려움이 자라며, 인정을 먹으면 공허가 자랍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무엇이 자라느냐를 결정합니다.
예수님은 배를 채우는 떡이 아니라, 존재를 살리는 생명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한 번의 기적을 기억하는 일이 아니라, 오늘도 그분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연휴가 끝난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는가?
묵상과 성찰 3가지
예수님은 내 공허를 잠시 덮어 주는 간식이 아니라, 내 존재를 새롭게 빚어 가시는 생명의 양식이십니다. 썩을 양식으로 불안을 키우던 삶에서, 생명의 떡으로 자유를 배우게 하십니다.
최근에 마음이 흔들렸던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때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은 하나님과의 신뢰였습니까, 아니면 체면, 결과, 비교 속에서의 내 위치였습니까? 나는 생명의 떡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썩을 양식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