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

이지열은혜이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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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읽는 묵상

무덤 앞에는 냄새가 났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이 아닙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나흘이라는 시간은 완전히 끝났다는 의미였습니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고 기적을 말할 상황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미 결론을 내려버렸습니다.

“이 일은 끝났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위로하고, 울고, 장례를 치르고, 그리고 조금씩 잊어가는 것.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마지막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이 장면을 너무 잘 압니다.

병원 중환자실 앞에서, 관계가 완전히 무너진 자리에서, 몇 년을 버텼던 꿈이 무너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같은 말을 합니다.

“이제 끝난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의 언어로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이 관계는 회복 안 될 것 같아요.” “이 사회는 이미 너무 망가졌어요.” “나는 이미 늦은 것 같아요.” “내 인생은 이미 방향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희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냉소가 현실감각이 되고, 체념이 지혜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무덤 앞에 서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에게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당황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 11:39

이 말은 사실 그 시대 사람들의 말만이 아니라 우리의 언어이기도 합니다.

“주님, 이 문제는 이미 늦었습니다.” “이 관계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 인생은 이미 망가졌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이미 현실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예수님은 죽음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의 가능성을 토론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절망을 분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무덤을 향해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 순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죽음이 대답했습니다. 묶여 있던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무덤 속에 있던 사람이 생명의 자리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이 사건은 단지 한 사람이 살아난 이야기가 아닌, 예수님이 죽음보다 크신 분이라는 선언입니다.

세상은 말합니다. 죽음이 마지막이라고, 포기가 현실이라고, 또 절망이 가장 정직한 태도라고.

그러나 이 표적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이 끝이라고 말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시작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무덤이 있습니다. 관계의 무덤, 희망의 무덤, 꿈의 무덤, 믿음의 무덤.

그리고 그 무덤 앞에서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부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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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열은혜이음교회

은혜이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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