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읽는 묵상
오늘 본문은 조금 이상합니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엄을 노래합니다.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
그런데 그 찬양을 듣던 이사야는 갑자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쇠잔하였고 나는 쇠잔하였으니 내게 화가 있도다.”
찬양을 들었으면 힘이 나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탄식합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믿고 있다면 조금 더 담대해야 할 것 같은데, 이사야는 현실을 보며 무너집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실제 모습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신앙이 좋으면 마음도 빨리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했으니 괜찮아야 하고, 말씀을 읽었으니 불안이 사라져야 하고, 하나님을 믿으니 힘든 일을 겪어도 긍정적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힘든데 입으로는 “괜찮아요”라고 말합니다. 관계는 풀리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죠”라고 하고, 경제적인 문제와 미래가 두려운데도 믿음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사야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보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정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쇠잔하였다.”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있다.” “땅이 깨지고 흔들린다.”
성경의 믿음은 현실을 작게 만드는 능력이 아닙니다.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마지막 장면은 아니라고 믿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23절)
이사야가 바라보던 세상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왕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내가 붙들고 있던 작은 세계가 흔들리는 순간을 만납니다. 생각했던 진로가 어긋나고, 믿었던 사람이 예상 밖의 모습을 보이고,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 우리가 가장 힘든 이유는 문제가 하나 생겼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일이 앞으로도 계속되면 어떡하지?’
현재의 한 장면을 인생 전체의 결론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억지로 웃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 일도 아니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
다만 지금 네가 보고 있는 장면에게 마지막 문장을 쓰게 하지는 말아라.
이사야의 탄식 뒤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땅보다 더 마지막에 남는 것은 왕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믿음은 모든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불안하면서도 출근하고, 답답하면서도 한 사람을 사랑하고, 결과를 모르면서도 오늘 해야 할 일을 하고, 기도할 말조차 잘 떠오르지 않아도 다시 하나님 앞에 앉는 것.
그것도 충분히 믿음입니다.
찬양은 내가 지금 괜찮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지금 괜찮지 않아도 하나님은 여전히 왕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소망은 내가 다시 강해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내가 흔들리는 날에도 흔들리지 않는 분이 계신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하루, 마음을 억지로 밝게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탄식해도 됩니다.
그러나 탄식이 내 인생의 마지막 문장이 되게 하지는 맙시다.
마지막 문장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는 요즘 어떤 ‘현재의 한 장면’을 내 인생 전체의 결론처럼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 일의 마지막 문장을 하나님께 맡긴다면 오늘 나는 무엇을 조금 다르게 할 수 있을까요?